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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하마 Jun 08. 2024

미니멀라이프 따라하다가 월세까지 받게 된 과정-7

주방 비우기

거실이 비워지고 서재거실로 변신하자 나의 저녁 자유시간이  훨씬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옷장과 화장대가 비워지자 꾸밈에 걸리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고 꾸밈의 효과는 배로 늘어났다. 심리적 여유, 시간적 여유에다가 효용성까지. 미니멀라이프에 푹 빠져들며 주방 비우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실 주방이 미니멀라이프가 가장 필요했다. 가장 먼저 시작했어야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곳이었다. 워킹맘인 나는 하루 중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 비율을 차지했지만.. 주방에서 나는 그닥 행복하지 못했다. 시간에 쫓겨  아침과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준비하다가 혹은 정리하다가 딸아이의 칭얼거림이 들리면 뛰쳐나가 딸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깨우고 재우고... 이 공간에서 나는 늘 동동거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여유가 있으면 예쁘게 플레이팅하는 재미로 즐업게 요리할텐데, 얼른 해치우고 출근하거나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내게 요리는 '끼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너무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하게 숙제를 해치우다가 식기세척기에 던지듯이 그릇을 넣어 놓고, 식기세척기 저 구석에 박힌 그릇을 어버린 줄 알고 그릇을 또 사기도 했다. 냉장고에는 양파와 파가 없는 줄 알고 서둘러 주문했는데 김치통 저 뒤에 숨어있기도 했으며, 반찬을 양껏 해놓고 이걸 담을 통을 찾지 못해 집 앞 마트에서 통을 한가득 사왔다가 뒤늦게 반찬통들을 선반 저 위에서 발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한가득 담아 간신히 넣어둔 반찬들은 또 다른 식재료나 그릇에 가려져 숨어있다가 다 상하고 나서야 발견됐다.


  흰밀가루보다 통밀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꽂혀 통밀빵을 직접 만들어먹겠다며 샀던 제빵기. 왜 시중에는 100%통밀빵이 없는지 그 떫은 맛을 보고 뼈져리게 느꼈다. 한 달 열심히 사용한 제빵기는 그 이후 주방 수납장 저 깊숙한 곳에 파묻혔다. 요구르트 발효기, 마늘 그라인더, 치즈 커터기 등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한 가지 용도를 위해 구입한 주방기구들이 그 용도와 쓰임이 다하면 잊혀지기 일쑤였다.


  신혼 때 여기저기서 그릇 선물을 참 많이 받았다. 선물 받은 그릇들은 참 예쁘고 고급스러웠지만 매일 쓰기에는 너무 무겁고 컸다, 그래서 따로 코렐 식기세트를 주문하고, 고급스러운 이 그릇들은 주방 수납장 저 꼭데기에 쳐박혔다. 컵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물받은 머그잔들과 예뻐서 산 컵들이 뒤엉켜 식기세척기 구석에, 부엌 선반에, 수납장 저 구석에서 갈팡질팡했다.


  이제 우리 딸이 아기티를 완전히 벗고 완전히 어린이가 됐는데도 주방에 아기 용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난감이나 다른 그릇들을 소독하기에도 유용하다며 냅둔 젖병소독기, 언젠가 친구가 아기를 낳으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남겨 둔 유아 식기들과 방석 등. 막상 장난감은 이제 딸아이가 많이 가지고 놀지도 않아서 소독도 거의 하지 않게 됐고,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식기를 소독할 일도 없기에 젖병소독기를 사용한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친구들은 결혼한 지 몇 년 됐지만 아직 아기도 갖지 않았다. 언젠간 사용하겠지 했던 이 물건들을 지금  일 년이 넘어가도록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큰 물건부터 비워 여유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사용하지 않는 젖병소독기부터 중고장터에 팔았다. 제빵기나 발효기, 그라인더도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다이어트를 위해 통밀빵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아예 빵류를 안 먹는 것이 나았다. 머그잔에 물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리면 전자레인지는 훌륭한 발효기 역할을 했기에 발효기는 필요 없어졌다. 마늘 그라인더를 사용하고 설거지해 놓느니 그 시간에 그냥 식칼로 마늘을 다지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큼직한 도구들을 비워내니 여유공간이 생겼다. 촘촘하게 놓여 있던 식기들과 반찬통들을 전부 꺼냈다. 그 중 우리 세 식구가 쓸 만큼의 그릇, 머그잔, 반찬통만 골라냈다, 밥그릇 3개, 국그릇 3개, 큰 접시 3개, 작은 접시 3개, 쟁반 2개, 머그잔 6개, 플라스틱 반찬통 크고 작은 것 중 많이 쓰는 것만 6개. 유리 밀폐용기 크기별로 2개씩 총 8개 정도. 나머지는 중고장터에 나눔했다. 테트리스하듯 켜켜이 쌓여 있던 그릇들과 반찬통들이, 이제 한 개당 제법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여백의 미를 뽑냈다. 그릇들은 모두 한 공간에 한 종류씩. 내 손이 닿는 선반에만, 요리하다가 쉽게 꺼낼 수 있는 자리에만 놓았다. 너무 높은 선반이나 구석이라 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아예 비워 놓았다.


수저를 놓는 서랍칸이 수납장 맨 윗부분에 있었는데 나무로 두껍게 칸막이가 돼 있었다. 칸막이가 서럽칸을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무 칸막이를 아예 치우고, 서랍장에 다이소 정리함을 넣으니 이전보다 공간이 1.5배는 돼 보였다. 여기에 수저들을 정리하고도 일회용품(빨대, 젓가락)과 집게, 야채칼, 밀대, 거품기나 주걱과 같은 요리 소도구들이 들어갔다, 자연스레 요리 소도구들을 넣었던 통도 비울 수 있었다,


수많은 주방 수납장들이 텅텅 비워졌다. 예전에는 수납할 공간이 비어 있으면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물건이 줄어드니 동선이 더 단순해졌고, 쓰는 물건만 있으니 물건을 찾아헤매는 시간이 줄어 요리하기도 간편했다.


그리고 내가 바쁜 워킹맘이며 요리할 때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주말 아침 한가할 때에만 세 식구를 위해 국도 끓이고, 반찬도 볶고 무친다. 하지만 평일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평일 아침에는 과일주스나 아주 간편한 식사(유뷰초밥, 토마토계란볶음, 오리고기깻잎말이 등)만 만들었다. 그래야 딸아이도 아침밥을 너무 늦지 않게 먹는다. 한창 녹초가 되는 평일 저녁에는 아예 요리하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반찬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완제품을 주문하기도 하며 밀키트도 자주 주문한다. 요즈음 젊은 부부나 1인가구를 겨냥해 이런 음식들도 참 잘 나온다. 먹을 만큼만 주문해 먹는다.     냉장고도 이제 절대 식재료로 꽉 채우지 않는다. 한 눈에 보이는 가운데 부분에만 음식을 넣는다. 쌓거나 겹쳐 놓지 않고 한 공간에는 한 가지 식재료만 놓는다. 이전에는 냉장고도 알차게 꽉 차 있었는데, 이제 우리 집 냉장고는 딱 2/3만 채워진 느낌이다.


주방을 비우고, 행복하지 않던 요리하는 시간까지 비우니 일상의 많은 부분에 여유가 생겼다.


주방 비움 또한 신세계였다, 이제 어디를 비워 볼까. 어느 공간의 미니멀라이프를 또 시작해 볼까.


아, 이제

신발장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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