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쳐 본 아줌마의 하소연-5
학부모가 되어 다짐한 것들
고등학교 3년 내내 잘못된 방법으로 한 공부는, 내가 열심히 해도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자꾸만 의심하게 만들었다. 막연히 불안했고, 방법이 잘못됐으니 당연히 실패한건데 나는 '열심히 했는데 운도 없다'며 절망했다. 한동안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제 우리 딸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자 그런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났다. 충분히 행복하게 학창시절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그래서 우리 딸은 그 시절 나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몇 가지 다짐하게 됐다
첫 번째, 공부방이나 학원을 보내거나 학습지, 문제집을 풀기 전에 교과서를 철저히 공부하기로 했다.
학기가 시작되면 딸아이가 학교에서 배울 교과서를 한 권씩 더 개인적으로 구비해 놓았다. 학교에서 배포하는 교과서는 학교 사물함에 두고 집에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교과서 출판사 쇼핑몰에서 쉽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매 주 주간학습안내가 가정으로 발송되기에 어느 날 무슨 수업을 하는지는 주간학습안내장과 교과서를 함께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 이래로 지금까지 그 날 배운 수업 내용을 함께 교과서로 복습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온 낱말 중 뜻을 잘 모르는 것은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그리고 수학은 교과서 문제만 풀지 않고 수록된 놀이 활동, 부록 활동 자료, 사진과 구체물 자료까지 충분히 활용한다. 단순히 계산 방법만 짚어보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당분간 선행학습은 하지 않고 그 날 배운 내용을 철저히 복습할 것이다. 교과서로는 그 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유일하게 구비한 수학 문제집으로는 오히려 지난 학기에 배운 내용을 풀어보는 후행학습을 진행한다. 딸아이가 2학년 2학기인 지금 수학공부는 2학년 2학기 수학교과서, 2학년 1학기 수학문제집만을 가지고 한다. 많은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개념을 정확히 아는 것을 더 중시하며 공부한다. 다른 과목도 교과서로 복습만 한다. 수학 이외에는 문제집을 풀지 않는다. 교과서를 충실히 읽고도 시간이 남으면 관련 권장도서를 빌려 읽는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 수능 전까지 완료해야 할 학습량이 많아 과한 선행이 아니더라도 한 학기정도의 선행학습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행 학교수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 이야기이다. 나선형교육과정의 특징을 뒤늦게 깨달았기에, 이에 맞게 탑을 차곡차곡 쌓듯 복습 위주로 공부하도록 조언할 것이다.
셋째, 서툴더라도 초등학교 시기부터 자기주도학습을 기본으로 하고, 자신만의 공부 방법이 제대로 생긴 후 본인의 선택에 의해 사교육을 활용하도록 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기에 자기주도학습은 학생들이 아직 어린 관계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부모님들이 학원에 보낸다. 학원에 가면 공부 방법을 배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 방법은 반드시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그 날의 학습 목표를 이루고 모르는 개념이 없을 때까지 철저하게 교과서를 파고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기에 이걸 스스로 하기는 무리이므로 최대한 나와 함께 이런 방법으로 공부할 것이다. 이런 공부 습관이 들어 중학생 때부터는 완전히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넷째, 공부의 목적이 시험 점수라는 결과가 아님을 강조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함이 아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것만도 아니다. 어려운 개념도 이해될 때까지 파고들며 생각하는 힘 키우기, 하기 싫은 일도 참으며 해내는 태도,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 성과를 내 보는 값진 경험을 갖는 것. 이것들이 정말로 중요한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입에 매몰돼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만 기를 쓴다. 그래서 시험 점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무너진다. 그런데 어쩌다 운이 좋아 대입시험의 결과만 좋아 명문대에 진학하더라도 공부의 중요한 다른 목적들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은 계속 사회생활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힌다. 공부의 여러 목적을 이루며 해낸 결과로 대학입시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설령 대입에서 크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우리 딸이 다른 목적들(태도, 생각하는 힘, 노력과 성과의 경험 등)을 이뤄내는 과정이 충분했다면 훨씬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딸이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점수보다는 더 중요한 공부의 목적들을 생각하며 보다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학창시절 내내 세 끼 골고루 먹고 꾸준히 운동해 건겅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수능시험을 준비할 때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모든 면에서 달랐지만 가장 달랐던 점이 바로 식사와 운동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내내 잘 먹고 매일 아침에 운동한 덕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때의 생활습관이 주욱 이어져 지금도 골고루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에 아무리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여도 골고루 세 끼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을 공부 시간 늘리기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내가 다짐한 원칙들을 잘 실천했을 때 우리 딸이 과연 10년 후 좋은 성적으로 대입에 성공할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대입제도도 수시로 바뀌고, 시험 성적이라는 것은 운도 일부분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실쳔한다면 적어도 사회에 나와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립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확신한다. 대입보다 더 장기적인 목표로 양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거나 다른 학부모들의 카더라 통신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