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2년차에 덜컥 입학했던 특수교육대학원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부터 20대 여자들이 생각하는 미래가 이전 세대와 비교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90년대까지는 20대 여자들이 대학졸업 후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했다면 우리 세대에서는 '커리어우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몇 년 전쯤 비혼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30대 후반의 미혼 남녀들이 많아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동기들 중에서(특히 여학우들) 교사가 되면 바로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거라고 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모두들 '30대 초반까지는 커리어를 쌓다가'라고 이야기했다. 결혼과 출산 이야기는 뭔가 시대착오적이고 고루한 것이라 여겼다. 당대 유행하던 자기계발서들도 '여자생활백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과 같은 책들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걸까. 참 어렸던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멋진 커리우먼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할지에 꽂혀 있었다. 내 성향과 적성에 맞는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그냥 남들에게 멋져보이고 싶었다. 진취적이면서도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는 학생처럼 보이는 문구들을 적으며, 지금도 떠올리면 이불킥하는 싸이월드 흑역사를 종종 남겼다.
'교사가 돼도 안주하지 말고 석사학위랑 박사학위 따서,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교수님까지 돼보자!'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워서 미소가 지어지는 꿈을 가지고 대학시절을 보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된 후에도 이 꿈을 잊지 않고 대학원을 기웃거렸다. 특수교육대학원이라면 주말 과정이라 학교근무와 병행할 수 있겠다 싶어서 덜컥 원서를 넣었다.
원서 마감 하루 전 날이었다. 같은 지역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썸남과 출장을 핑계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중 반신반의하며 조금은 의도적으로 "저 특수교육대학원 원서 넣었어요!"라는 말을 흘렸는데, 다음 날 썸남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도 그 대학원에 원서 접수하러 왔습니다. 오늘은 마지막날이라 현장접수만 된대서 직접 여기까지 왔네요. 대학원 면접날 봬요."
... 아, 이남자 나 좋아하는거 맞구나.
찐친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나랑 연락하던 그 선생님이 나 따라서 갑자기 대학원 원서 넣었대"
친구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답문이 왔다.
"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퍼다 백퍼, 똥글이(고등학교시절 내 별명) 곧 남친 생긴다에 오백만원 걸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썸남도 나도 둘 다 교직 2년차에 특수교육대학원을 다니게 됐다. 오랜 썸을 끝내고 연인이 되고 싶던 나는 서툰 운전을 핑계로 카풀을 제안하는 플러팅을 했다. 세네번 카풀 끝에 우린 커플이 됐다. 지금 그 남자와 슬하에 초등학생 딸을 하나 두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