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면서 성장한 경험
특수교육대학원은 총 5학기였다. 3학기까지는 학부때와 똑같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그러나 3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대학원 동기 선생님들은 지도교수님을 찾고, 논문 주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4학기가 되기 전까지 논문 제목정도는 정하는게 좋아"
어느 대학원 선배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논문 제목 정하는게 뭐 어렵다고, 한 줄짜리 제목인데. 기존 논문 제목들 보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던데, 4학기 시작되고 정한다고 늦으려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관심 있었던 주제들을 몇 가지 가지고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너무 추상적이야. 어휘조차 모호한데 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측정하냐"
"너무 뻔한 주제야. 결론이 뻔한데 무슨 연구를 해"
"설문지 돌리는 통계조사는 개인이 하는 게 아니야. 국립특수교육원에서 해야지. 개인적으로 할만한 다른 것을 찾아봐."
.. 모두 퇴짜였다. 논문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보다.
대학원 수업 중 대충 훑었던 논문의 제목돌은 대부분 '~한 학생이 ~한 효과', '~의 실태 조사', '~의 인식 조사'와 같은 형태였다. 이게 그냥 나온 제목들이 아니었구나. 그 논문들을 자세히 보니 교수님 말씀대로 개인 석사논문이 아니라 공동 연구이거나, 기관 및 단체에서 수행한 것들이었다. 표본을 아주 크게 하거나 실험실처럼 매우 통제된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어릴 때부터 과학, 실험, 체험이나 탐구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설문참여를 독려할 넓은 인맥 따위 내겐 없었다. 나한테 맞는 다른 연구 방식이 있을까 다시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같은 교수님이 지도하시는 대학원 선배의 논문을 읽게 됐다. 처음에는 제목과 연구 방법만 참고하려고 했는데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나도 이런 논문을 쓰고 싶다!!'
선배의 논문은, 공통된 경험을 한 교사들에게 그 경험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형태였다. 공통된 경험이 선생님들의 교직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분석한 것이었다. 나는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 그 대화를 듣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대화한 내용을 혼자 곱씹으며 내게 주는 교훈과 의미를 찾아 글로 적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나에게 정말 찰떡이었다. 내친 김에 선배의 논문과 비슷한 논문들을 찾아보며 문헌분석을 했다. 그게 질적연구방법임을 알았고, 이건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수님, 저 ~ 한 교사들의 업무 경험과 그 의미"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보고 싶습니다"
"... 그래! 해봐라."
논문을 쓰기 위해 해당 업무 경험을 가진 선생님들을 물색했다. 맨땅에 해딩하듯 생전 모르는 선생님들이 근무하시는 학교들로 전화를 돌렸다. 총 7분의 선생님들이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 주셨다. 선생님들은 모두 경력이 10년 이상 된(당시 나는 경력 3년을 조금 넘은 교사였다.) 선배 선생님들이었다.
난생 처음 본 어린 후배교사의.. 뜬금없는 인터뷰 요청. 지금 생각해 보니 나같으면 매우 부담스럽고 귀찮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꽤 긴 시간(2시간 남짓) 내내 성의껏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마치 본인의 딸, 막내동생에게 이야기하듯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지금 되돌아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
인터뷰했던 선생님들은 충남, 전남, 경기, 충북 등 여러 지역의 선생님들이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인터뷰하러 다녔다. 인터뷰 한 분 하는 데 이동시간 포함 하루가 꼬박 걸렸지만,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학교가 있는 지역을 여행하듯 기차랑 버스를 탔고, 인터뷰가 끝나면 학교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 내용들을 정리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 카페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라 논문을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충만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논문관련된 내용 뿐 아니라 학급 운영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대학원 5학기 중 1학기부터 3학기까지는 특수교육학 이론들을 내 수업에 적용하며 성장했고, 4학기와 5학기는 논문을 쓰면서 선배교사들의 지혜를 오롯이 배우고 성장한 셈이다. 이후 나는 동료, 후배 선생님들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면 적극 추천한다. 같은 전공 대학원으로 진학하니 물론 학부 때와 수업 내용은 비슷하겠지만, 학부때는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수동적으로 외우고 시험을 보며 공부했다면 석사과정동안에는 내가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한 논문 초안. 많이 미숙하고 허접했지만 박사과정 선생님들과 지도교수님의 끈기 있는 지도 하에 무사히 논문심사에 통과했다. 눈문을 수정하고 최종적으로 학회지에 제출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배웠다. 그리고.. 대학원 연구실의 문화도 간접적으로 겪으며 나에게는 대학교보다 중, 고등학교 현장이 더 적성에 맞다는 것도 알았다. 해맑기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에 바랐던 유학과 대학교 교직원의 꿈은... 대학원을 경험하자 오히려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 그래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도전하기보다는, 다음 대학원은 특수교육학이 아닌 심리상담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싶다.
..... 추신 ) 선배와 나의 논문 제목을 공개하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