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들 미래를 위해서? or 아빠가 자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좋은 것이라고 늘 들어왔던 것이지만,
아빠가 마음 한 켠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었던 한 가지.
남을 위한 기도와 그 기도의 힘
내가 아무리 열심히 밤낮으로 어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한들
막상 그 기도의 대상자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말 그대로 무의지의 표상이라면?
과연 나의 기도는 의미가 있는 기도일까?
그런 기도는 대체 왜 하라고 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 시간에 나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회사 후배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물론 농담으로)
자기는 자기 아버지가 재벌이 되시기를 항상 기도한다고,
그래서
아빠도 대답했지.(물론 농담으로)
나는 나중에 우리 애들이 성공한 벤처 사업가의 될 수 있게 기도한다고.
위의 두 꿈은 과연 다른 이를 위한 기도일까, 아니면 나를 위한 기도일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곧 나를 위한 기도가 된다면,
그건 중보 기도가 아니겠지?
아빠가 생각했던 중보 기도는
남 잘되라고 하는 기도인데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 놓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 영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 가길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뜻을 세워가는 기도였던 것 같아.
예수님께서는 왜 이 땅에 계실 때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어.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는 단순히 남들이 잘 되기를 비는 아빠의 기도와는 다른 기도였을 거야.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그 순간에도
눈앞의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그 마음의 기도 말이야.
다른 사람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나고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 기도의 힘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야.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단순히 친한 사람들이나 나랑 가까운 사람들 잘 되기를 비는 기도에서 멈추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사람을 위한 진정한 기도 또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아.
왜 우리의 마음속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게 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
나의 인생과는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는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될 때,
혹은 실제로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는 아프리카의 어떤 굶주린 사람을 TV에서 볼 때조차도...
왜 내 마음이 이리 어렵고 힘들어지는지.
문제집 뒤에는 항상 해답이 있고,
독초가 있다면 그 근방에는 약초가 있듯이
남들 볼 때 어려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동시에 기도의 능력 또한 같이 주셨을 거야.
우리 딸 아들 마음에 긍휼을 주시기를
그 긍휼이 기도가 되기를
그 기도로 인해 다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세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