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의 결실, 서울 내 집 마련기
칠흑같이 어두운 방, 나는 요란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상실감’에 함께 좌절하듯 비바람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올여름의 태풍은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였으며,
뉴스에서는 건물들이 흔들리는 것을 연신 보도했다.
태풍이 가진 파괴적인 힘 앞에서 나는 더욱 무력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슬픔의 늪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버릇처럼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투자했던 종목들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확인 사살하며,
슬픔과 허탈함에 더욱 침묵해져 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물에 빠진 생쥐는 다시 한번 증권 지점을 찾아갔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가엾게 여겼던 펀드매니저는 나에게 브라질 채권을 추천해 주었다.
브라질 채권 상품은 브라질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약속한 기간 동안 투자자들에게 매년 투자금의 10%의 이자를 지급하며, 만기에 원금을 상환한다.
브라질 채권 상품은 고정수익형 상품이지만,
브라질 경제의 안정성과 브라질 환율의 변동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수익이 달라질 수 있다.
월드컵 때나 한 번씩 들어보던 브라질.
선수들의 피부색과 대비되어 더욱 화사하고 활기찬 샛노란 유니폼의 국가.
나는 이어서 브라질 국가에 대하여 스터디를 한다.
브라질은 지리적으로 넓은 면적과 다양한 지형 구성 덕분에,
각 산업에 주요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례로, 브라질은 세계에서 17위 이내의 원유 생산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철광석 생산국 중 하나이다.
브라질에서는 커피, 대두, 설탕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며,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농산물 수출국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브라질은 세계에서 8번째로 큰 달러 보유국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정치적 안정성이 낮아서,
국제 뉴스 헤드라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늘 시끄러운 국가라는 점이었다.
잠시 고민했다.
국가 자체만의 하드웨어는 튼튼하다.
결국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의 고질적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서 정치인들이 물갈이되면 해결될 수 있는 단점 같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5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나오며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수많은 알력싸움과 그에 따른 희생자들이 있었다.
어느 국가든, 더 큰 도약을 위한 과정의 시간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래, 브라질 국채로 새 국면에 도전하자.
브라질 채권은 최소 투자금액이 1천만 원이었다.
나에게 남은 건 주식투자를 망한 후 남은 거스름돈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주어진 상황에 나를 맞추어 열심히 노동을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세후 3백만 원 좀 넘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했고,
가끔 친구들도 만나서 커피도 마셔야 했으며, 나를 위한 쇼핑도 간절했던 시절이었다.
천만 원을 향한 마음은 조급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Seed money 1억은 커녕, 1천만 원 저금도 버거웠다.
조급함은 날 구차하게 만들었다.
휴가 없이 일했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차는 모두 반납하여 돈으로 받았으며,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에 “원하는 선물 있어?”라는 지인들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돈”이라고 대답했다.
거짓말 보태서, 돈에 영혼을 팔았던 시기였다.
그렇게 8개월 후, 브라질 국채 1천만 원어치의 채권자가 되었다.
일 년 동안 이자 10%가 지급되어, 이는 마치 휴가 보너스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휴가 보너스는 그대로 저축하여 다음의 1천만 원 모으기에 집중했다.
더 나아가, 회사 연차가 늘어날수록, 연봉도 함께 올랐다.
나는 아끼고, 모으고, 더 구질구질해지고…
반복된 삶을 몇 년 살다 보니 다음의 천만 원은 수월했고,
그 이후 세 번째 천만 원 모으기까지의 시간은 미처 계산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회사 생활 3년 만에 5천만 원을 모았다.
이쯤 되니, 투자금의 10% 이자는 13월의 월급 같은 개념이 되었다.
부자들은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돈이 그들을 위해 일한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아버지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의 구절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정부의 부패와 돌아선 민심은 회복이 어려웠던 혼돈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헤알화의 하락으로, 고민 끝에 브라질 채권을 3년 만에 정리했다.
이슈 많았던 브라질의 사정 상, 만기 시 원금을 상환한다는 상품 소개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의 브라질 채권 이자가 내 Seed money를 향한 제2의 수입원이었으며,
원금 손실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감사했던 건,
브라질 채권의 최소 투자금 1천만 원 요건이었다.
1천만 원이라는 목표는 나의 저축의 원동력이 되었다.
“돈, 돈, 돈 밖에 모르니?”라는 주위의 훈계가 일상이었던 시간.
가장 예쁘고 빛났을 때, 돈으로 행복을 사지 않았던 시간.
늘 가격에 멈칫했던 순간.
그렇게 달렸던 시간은 나의 ‘주식 실패’에 대한 피나는 반성이었고,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향해 더욱 강해지는 과정이었다.
나에겐 5천만 원은 첫 번째 집을 구매할 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