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쓰던 용돈 기입장은 참 단순했다. 들어온 돈과 나간 돈, 그리고 지금 내 주머니에 남은 것만 적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회계를 배우고 나니 알게 되었다. 세상의 장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회계의 기본인 복식부기는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왼쪽 차변에 무언가 들어왔다면, 오른쪽 대변에는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혹은 무엇을 희생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이것은 거래의 이중성이자, 냉정한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회계 거래의 8요소를 인생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매 순간 거래를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중 가장 흔한 거래는 자산의 증가와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는 ‘교환 거래’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면 현금이라는 자산은 줄고 상품이라는 자산이 늘어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내가 가진 다른 자산을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 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놓치기 싫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여행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계의 원리는 냉정하게 말한다. 직장이라는 ‘안정’을 차변에 적으려면, 대변에는 ‘자유’라는 자산의 감소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젊은 나이에 큰 부를 이룬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아마 청춘이라는 ‘시간 자산’과 건강이라는 ‘신체 자산’을 대가로 치렀을 것이다. 선택이란 결국 나의 장부에서 어떤 자산의 감소를 기꺼이 기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것. 이는 슬픈 일이 아니라 장부의 균형을 맞추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시선을 ‘비용’으로 돌려보자. 우리는 매일 ‘시간’이라는 자산을 쓴다. 이 소중한 자산이 줄어들 때, 차변에 무엇이 기록되는지가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은 단순한 ‘비용’으로 소멸되지만, 꿈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시간은 훗날 수익을 창출할 ‘자산’으로 기록된다. 회계에서 비용(원가)은 수익 창출을 위해 필수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겪은 고생과 노력이 단지 사라지는 자산의 감소가 아니라, 미래의 성취를 불러올 정당한 비용으로 기록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대변에서 내 시간과 체력이 빠져나갈 때, 차변에 ‘경험’과 ‘실력’이라는 항목이 또렷하게 적히고 있다면 그 거래는 남는 장사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대변에 ‘부채의 증가’를 기록하고 차변에 ‘자산의 증가’를 적는 경우다. 남들 시선을 의식해 빚을 내어 명품을 사거나, 감당하지 못할 거짓말로 위상을 높이는 일들이 그렇다. 당장은 차변의 자산이 늘어 삶이 풍요로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차평형의 원리에 따라 대변에 적힌 부채는 언젠가 반드시 상환해야 할 의무로 남는다. 대가 없이 얻은 것은 결국 빚이고, 빚은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이제 조용히 나의 장부를 펼쳐본다. 나는 무엇을 얻었고, 대가로 무엇을 지불했는가. 나의 차변과 대변은 일치하고 있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대변에 무엇을 기록할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다. 어차피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면, 가치 없는 것에 나를 소모하지 않기를. 더 크고 빛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나의 것을 내어주는 것이 회계가 알려주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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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장부가 훗날 마감되었을 때, 내가 얻은 모든 것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떳떳한 기록들이기를 바란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제값을 치르고 얻은 행복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진짜 내 것이니까.
오늘도 溫데이즈~
이미지 출처: 거래의 8요소, 조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