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스 난 안경을 굳이 고쳐 쓰는 마음

흐릿해진 세상을 다시 선명하게 닦아내는 법

by 아마토르

날씨 탓이 아니다

저는 시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안경 없이 생활해도 되지만, 업무를 볼 때나 운전할 때는 안경을 주로 씁니다. 블루라이트 차단과 외부 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말 그대로 '보호 장구'입니다. 안경은 패션 아이템이자 눈을 위한 작은 보호막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 시야가 자꾸만 뿌옇게 느껴졌습니다. 안경닦이로 아무리 닦아도 소용이 없어 밝은 불빛 아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렌즈 표면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가득했습니다. 코팅도 일부 벗겨져 빛이 번지고 난반사가 일어나는 상태였습니다. 매일 닦아낸다고 했지만, 옷깃이나 거친 휴지로 문질렀던 마찰들이 누적되어 렌즈에 물리적인 손상을 입힌 것입니다.

결국 안경점에 갔습니다. 안경사는 렌즈 상태를 돋보기로 꼼꼼히 살피더니 말했습니다.

"아이고, 수명이 다했습니다. 코팅이 다 벗겨져서 오히려 눈 피로도가 올라가요. 렌즈 교체하셔야 합니다."


교체보다는 관리

전문가의 진단은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냥 피팅만 다시 잡아주세요. 좀 더 쓰겠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렌즈 값 몇 푼 아끼자고 눈 건강을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안경을 쓰는 주된 목적은 '시력 교정'이 아니라 '보호'였고, 스크래치가 났다는 건 그만큼 안경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내 눈 대신 상처를 입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교체하는 것보다 현재의 상태를 관리하며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새것으로 바꾸는 건 쉽습니다. 돈만 지불하면 해결됩니다. 소비는 간편한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번 교체로 해결하는 태도는 삶의 비용을 높입니다. 물건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조금만 삐걱거리면 관계를 끊고, 조금만 힘들면 직장을 옮기고, 조금만 지루하면 새로운 자극을 찾습니다. 매번 리셋 버튼을 누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척과 조율

안경사는 헐거워진 나사를 조여주고 틀어진 안경다리의 균형을 맞춰주었습니다. 물론 세척까지. 다시 써보니 드라마틱하게 선명해지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미세한 기스는 시야 한구석에 걸립니다. 하지만 기름때가 사라져 시야는 훨씬 쾌적해졌고, 피팅을 다시 받은 덕분에 흘러내림도 사라졌습니다. '완벽한 새 상태'는 아니지만 '사용 가능한 최적의 상태'로 복구된 것입니다.

기스가 난 렌즈로 세상을 보는 건 처음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불편함은 내 감각 기관의 적응력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렌즈의 기스가 아니라, 그 너머의 세상을 보려는 나의 의지입니다.


마음의 렌즈 세척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렌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오해라는 먼지가 쌓이고, 편견이라는 기스가 나고, 고집이라는 기름때가 낍니다. 그러면 세상이, 타인이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게 분명해.", "나는 왜 항상 되는 일이 없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세상이 엉망인 게 아니라 당신 마음의 안경이 더러워진 건 아닐까요?

이럴 때 필요한 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렌즈를 닦아내는 일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명상, 글쓰기, 혹은 산책...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초음파 세척기입니다. 엉클어진 생각의 나사를 다시 조이고, 비뚤어진 마음의 각도를 초심에 맞춰 다시 피팅하는 과정입니다.

새것으로 바꿀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고,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납니다. 그때마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낡아가는 육체와 상처 입은 마음을 데리고 끝까지 살아가야 합니다. 새것으로의 교체가 아니라, 꾸준한 유지 보수를 하는 것이죠. 운동으로 근력을 유지하고, 좋은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독서와 사색으로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은 기스 난 렌즈를 닦아 쓰듯, 불완전한 나를 관리하며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어른의 태도입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군대 구호 같지만, 이것만큼 삶의 관리를 잘 표현한 말도 없습니다. 사용하는 도구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노트북 화면, 안경 렌즈, 스마트폰 액정. 얼룩과 먼지로 뒤덮여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당장 닦으십시오. 기스를 없앨 수는 없지만, 먼지는 없앨 수 있습니다. 먼지를 닦아내는 행위만으로도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기분이 환기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감각을 익히십시오. 기스를 견디며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 것입니다.


낡은 안경을 쓴 채, 저는 오늘도 또렷하게 제 할 일을 합니다.

이전 09화이가 나간 머그잔을 다시 찬장에서 꺼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