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024. 11. 06.(수)
어제도 손녀딸은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감기 기운이 좀체 가라앉지 않아서다. 딸네 집 문을 열며 손녀딸의 기척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손녀딸이 벌써 깨어 있다는 건,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다행히 손녀딸의 기척이 없다. 제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다. 얼른 아내가 손녀딸 곁에 가 누웠다. 누가 옆에 있으면 손녀딸이 잠을 푹 잘 자기 때문이다. 사위와 딸내미가 차례로 출근하고 나도 거실 소파에 몸을 눕혔다.
어디선가 '꽥꽥' 하는 오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 보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손녀딸 방으로 가보니 손녀딸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는데 손에 장난감 오리를 들고 있었다. 장난감 오리가 목을 끄덕일 때마다 '꽥꽥' 하는 소리가 났다. 손녀딸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도 곧 뒤따라 나와 손녀딸 아침밥을 준비했다.
아침밥을 먹이면서 텔레비전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베이비 버스'를 보여달라고 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제목이다. 내가 늘 손녀딸에게 각종 애니메이션을 보여 주던 넷플릭스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그런 제목의 애니메이션은 보이지 않는다. 손녀딸은,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거 못 찾아. 못 찾아."라면서 울먹인다. 재빨리 출근한 딸내미한테 전화를 했다. 이런! 그 '베이비 버스'는 넷플릭스가 아니라 유튜브에 있단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서 손쉽게 그 '베이비 버스'를 찾았다. 애니메이션을 틀자마자 손녀딸의 울음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할아버지 노릇을 잘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미리미리 알아 놓아야 할 일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손녀딸의 컨디션이 좋은 듯하다. 소고기 뭇국에 만 밥도 다 먹었고 깎아 논 사과도 거의 다 먹었다. 처음에 아내가 사과와 배를 반반 섞어 깎아 주었더니, 손녀딸은 사과가 너무 적다며 '온통 사과!"라고 울먹이며 외쳤다. 그래서 득달같이 배를 없애고 사과로 접시를 가득 채워 '온통 사과'를 주니까 군말 없이 잘 먹었다. 아내가 골라 온 옷도 한 번에 오케이를 하고 양치질과 얼굴에 로션 바르기도 아주 매끄럽게 끝났다.
이제 병원에 들러 어린이집으로 가면 된다. 손녀딸은 여전히 가래가 남아 있고 중이염도 약간 있다고 한다. 약을 며칠 더 먹어야 할 것 같다. 병원에서 키와 몸무게를 쟀는데, 몸무게가 14.8kg이란다. 저번에는 15.7kg이었는데 1kg 가까이 줄었다. 몸이 좋지 않아 먹는 게 시원치 않더니 몸무게가 그렇게 빠졌나 보다. 어서 입맛을 회복해서 잘 먹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9시 50분이다. 어린이집 현관이 텅 비어 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손녀딸 홀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손녀딸이 선생님과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아내와 나를 발견하고 손을 열심히 흔든다. 다른 때에는 손을 저렇게 흔들어 주지 않는데 오늘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주 세차게 손을 흔들어 댄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손녀딸이 쏙,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에 가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어제와 그제, 그 일상이 깨어졌다. 새삼 일상의 중요성을 느낀다. 어제와 그제는 손녀딸이 아파서 일상이 깨졌는데, 그 어떤 이유로도 일상은 깨지지 않는 게 좋을 성싶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틀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만 지내느라 좀 심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낮잠도 마음껏 자고, 푹 쉬어서 손녀딸도 기력 회복의 동력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몸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을 테니, 장난꾸러기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
어린이집 주차장이 혼잡할까 봐 근처 교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주차하는 것인데 누가 나와서 뭐라고 할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교회 예배 시간도 아니고 하니, 딱히 뭐라고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왠지 눈치가 보인다. 나만 그런가?
어린이집으로 가서 유리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손녀딸이 손에 과자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제법 큼직하다. 어린이집에서 어제 학부모 참관 수업 후 아이들에게 선물로 준 모양이다. 손녀딸은 몸이 아파 어제 결석해서 오늘 과자 박스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손녀딸이 좀 시무룩하다. 늘 가서 잠깐씩 놀다 가던 놀이터에 가서 놀자고 했더니, 얼굴 가릴 것도 없다면서 싫다고 한다. 그럼 그냥 집에 가자며 차에 태웠다. 차에서 아내가 손녀딸에게,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가 손녀딸이 놀려고 하는 아이와 자꾸 놀아서, 손녀딸이 놀고 싶은 아이와 많이 못 놀아서 기분이 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이집에 손녀딸을 속상하게 하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또 사달을 낸 모양이다. 나와 아내가 별것 아닌 양, 괜찮다고, 다른 아이들도 여럿 있으니 그 아이들하고 재미있게 놀면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내년에는 그 아이와 다른 반이 되게 해달라고 미리 이야기해 놓아야 할 것 같다. 모쪼록 손녀딸이 이 상황을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딸네 집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딸네 집으로 다시 들어오니, 손녀딸은 아내가 준비해 온 과자를 냠냠 맛있게 먹으며 텔레비전 시청 삼매경이다. 원래는 이 시간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이 아닌데, 아마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텔레비전을 보여달라고 했나 보다. 그래, 이틀 동안 그렇게 앓았는데 이 시간에 텔레비전 좀 본다고 뭐 그리 큰일이 나겠는가. 아무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만큼 아이를 엄격하게 대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손녀딸의 텐션이 갑자기 보통을 넘어섰다.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얼굴에 뭐가 묻자, "와하하하하." 하며 큰 소리로 과장되게 웃고, 그 캐릭터가 물건을 떨어뜨리자, "떨어뜨렸대요, 떨어뜨렸대요."라고 하면서 손가락질로 가리키기까지 하며 재미있어 한다. 또 갑자기 "빠하!" 인지 "뿌와!"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명을 지르며 나 품으로 달려들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 손녀딸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흐뭇했다.
오늘은 수학 놀이터에 가는 날이다. 보통 때는 세발자전거에 태워 나와 딸내미가 같이 수학 놀이터에 데리고 가는데, 오늘은 사위가 일찍 퇴근해서 사위 차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사위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나, 아내, 딸내미, 손녀딸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손녀딸이, "나, 힘들어?"라고 해서 내가 안고 내려갔는데, 제 아빠 차가 오는 걸 보자마자 "아빠~~~"라고 소리치며 생기발랄해졌다. 손녀딸과 딸내미와 사위는 수학 놀이터로 가고, 나와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