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강 Nov 08.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27>  2024. 11. 07.(목)

딸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딸내미가 손녀딸 방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손녀딸이 막 깨어 엄마를 불렀단다. 내미는 출근 준비하러 다시 제 방으로 가고 아내가 손녀딸에게로 갔다. 그런데 곧 아내가 다시 나온다. 손녀딸이 잠이 완전히 깨어, 애착 인형 보노만 만지며 침대에 앉아 있다고 했다.


  잠시 뒤 손녀딸이 뭐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손녀딸 방으로 가 보았다. 손녀딸은 막대사탕 껍질을 까려고 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이거 어떻게 까는 거냐고 묻는다. 밥 먹기 전에 사탕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더니, 들고만 있겠다고 한다. 그때 마침 사위가 손녀딸 방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그 사탕을 먹겠다는 걸 못 먹게 했단다. 그러면서 아침밥을 잘 먹겠다고 약속하면 사탕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손녀딸은 그러겠노라고 약속하고 사탕을 맛있게 먹었다. 아주 흐뭇한 미소를 만면에 가득 띤 채.


  딸내미와 사위는 출근하고, 늘 그렇듯이 딸네 집에는 손녀딸, 아내 그리고 내가 남았다. 아내는 손녀딸 아침밥을 준비하고 나는 손녀딸이 가져온 책을 한 권 읽어 주었다. 내가 읽어 주는 책을 꼼짝 않고 다 들은 손녀딸은 거실 한쪽으로 가 혼자 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잘 놀더니 갑자기 뭐가 없다고 소리친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뭐를 찾느냐고 물어보니, '열쇠'를 찾는데 그게 두 개밖에 없단다. 암만 보아도 '열쇠'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손녀딸에게는 그게 '열쇠'인가 보다. 색깔별로 네 개가 있어야 한다며 울상이다. 내가 같이 찾아보자고 하며, 여기저기를 뒤져 하나를 더 찾았는데 나머지 하나는 좀체 찾을 수 없었다.


  큰일 났다 싶은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우리 손녀딸은 자기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대번에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잘 못 찾아!"라고 외치면서 샐쭉해진다. 그러더니 "할아버지, 저리 가."라고 한다. 우리 손녀딸의 특기 중 하나이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공간을 분리하려고 한다. 아내가 보다 못해, 할아버지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자 이제 할머니한테까지 토라진다. "할아버지도 땡이고, 할머니도 땡'이란다.


  이럴 땐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게 좋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네 방으로 가서 혼자 생각 좀 하다가 나오라고 하자 손녀딸은 이내 제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는 방 문을 닫는다. 이것도 우리 손녀딸의 루틴이다. 요즈음은 문을 닫은 다음, 그 문 앞에 물건들을 쭉 늘어놓고 방어선을 치는 행동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닫힌 방 안에서 손녀딸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혼자서 역할 놀이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놀더니 빼꼼, 방문이 열리고 손녀딸이 할머니를 부르며 거실로 나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던 모양이다. 아내가 손녀딸을 꼭 안으며 할아버지한테 사과하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다가가 팔을 벌리자 나한테 안겨 온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으로 괜찮지 않나 싶다. 나한테 와서 안긴 것 자체가 화해하겠다는 제스처로 받아들일 수 있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벌써 여덟 시를 훌쩍 넘었다. 밥도 먹여야 하고 옷도 입혀야 하고 약도 먹여야 한다. 손녀딸이 선택한 '베이비 버스'라는 애니메이션을 틀어 놓고, 밥을 먹였다. 잘 안 먹는다. 간신히 반 정도 먹였다. 그래도 깎아 놓은 배는 다 먹었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손녀딸이 할머니와 티격태격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 아내가 뭘 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손녀딸은,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하고 놀지 않고 애착 인형 보노만 꼭 끌어안고 가겠다고 한다. 벌써 몇 번째 삐졌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 중이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손녀딸에게 역할 놀이를 시도했더니, 손녀딸이 순순히 대사를 받아주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는, 어린이집 출입구 앞에서 할머를 한번 안아주고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나 혼자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갔다. 어린이집에서 나온 손녀딸은 곧장 옆에 있는 놀이터로 달려간다. 거기에서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손녀딸과 그 아이는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 미끄럼도 타고 서로 잡기 놀이도 하고 놀이터 옆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한 30분 정도 그렇게 논 것 같다. 갑자기 손녀딸이 길가에 쪼그리고 앉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나 이제 여기 가만히 앉아 있을래."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가만히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 같이 논 친구는 매일 엄마가 데리러 온다며 좀 슬픈 얼굴로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 마음이 짠했다. 얼른 손녀딸을 꼭 안아 올리며, "순돌아, 순돌이 엄마는 일을 해서 매일 데리러 올 수가 없어."라고 말한 뒤, 얼른 집에 가서 잼 바른 크래커를 먹자고 했다.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꼼꼼하게 잼을 발라달라고 했던 그 크래커다. 같이 놀던 아이에게 바이바이를 하고 딸네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자 손녀딸은 언제 엄마를 찾았냐는 듯, 크래커를 맛있게 냠냠 짭짭 먹는다. 좀 심심해 보이기에 책을 읽어 주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동화책 두 권을 다 읽어 주었을 때, 딸내미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다. 손녀딸이 와다다 달려가 제 엄마 품에 꼭 안긴다. 


  엄마가 집에 오자 손녀딸은 신이 나서 혼자서도 잘 논다. 딸내미가 씻고 나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손녀딸과 놀아 주고 있는데, 손녀딸이 갑자기 "엉덩이 댄스, 엉덩이 댄스"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귀여운 엉덩이 춤은 난생처음 본다.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손녀딸 재롱 덕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딸내미가 저녁 준비를 거의 다 한 듯해서, 집으로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손녀딸이 내 다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같이 더 놀자고 매달린다. 하는 수 없이 일어서다 말고 주저앉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내 품에 찰싹 붙어 안기더니, 제 뺨을 내 뺨에 아주 착 밀착시키고 비벼댄다. "아이고 순돌아, 할아버지 뺨 뭉글어지겠다."라고 했더니,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오늘은 할아버지에게 애정 공세를 퍼붓기로 작정했나 보다.


  딸내미가 저녁 준비를 다 마쳤다. 이제 손녀딸은 온전히 제 엄마와 함께 놀 수 있다. 손녀딸과 딸내미의 배꼽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향한다. 퇴근이다.

작가의 이전글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