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한발 앞서 딸네 집에 들어선 아내가 흠칫 놀란다. 손녀딸이 벌써 깨어 있었던 것이다. 손녀딸은 제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자다 깨어 보니, 옆에 엄마가 없었다며 약간 눈물을 비친다. 딸내미는 출근 준비를 해야 해서, 내가 다가가 팔을 벌리니 다행히 손녀딸이 순순히 나에게 안겨 왔다.
휴대폰으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서, 손녀딸이 좋아하는 '오싹오싹 크레용'을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려주었다. 얇은 내복 바람인 손녀딸이 추울세라 아내가 가져다준 작은 이불로 폭 감싸 주었더니, 그 자세 그대로 이불에 감싸여 내 품에 안긴 채 꼼짝 않고 이야기를 듣는다. 딸내미와 사위가 출근할 때에도 내 품에 안긴 채 제 엄마, 아빠에게 바이바이를 했다.
딸내미와 사위가 출근하고 나서 아내가 손녀딸에게 과일을 어떻게 줄까 하고 물었다. '온통 바나나'를 달라고 한다. 다른 과일은 빼고 바나나만 달라는 소리이다. 아내가 바나나를 잘라 접시에 담아 갔다 주었더니, 바나나가 적다고 울상이다. 접시에 빈 곳이 보이지 않게 바나나를 꽉 채워 주었더니 그제서야 만족해하며 바나나를 먹기 시작한다. 제법 큰 바나나 두 개를 몽땅 다 먹었다. 그래서인지 소고기 뭇국에 만 밥은 거의 먹지를 않았다. 아내가 손녀딸을 위해 새로 끓여 온 소고기 뭇국은 맛이 제법 괜찮은데, 배가 부른 탓인지 입맛이 없는 탓인지 잘 먹지를 않는다.
오늘도 우리 손녀딸은 여전히 '착한 아이 모드'이다. 바나나를 먹으면서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연속 네 권을 읽어 주었다. 한동안 책을 좀 멀리하더니, 이젠 책을 읽어 주면 귀를 쫑긋하며 잘 듣는다. 책 읽고 나서 호흡기 치료도 하고 감기약도 잘 먹었다. 호흡기 치료할 동안에는 애니메이션 '페파 피그'를 틀어 주었다. 한동안 보지 않아서인지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잘 본다.
어린이집에 갈 채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서려니까 안아달라고 한다. 할아버지 손 잡고 걸어가자고 하니까, 다리에 힘이 요만큼밖에 안 올라왔단다. 엄지손가락을 검지손가락 손톱 밑에 대며 '아주 조금'이라는 표시를 해서 내게 보여준다. 어린이집엔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안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은 애착 인형 보노를 좀 끌어안고 있더니 이내 할머니와 역할 놀이를 시작했다. 역할 놀이에 열중하던 손녀딸은 차가 어린이집 주차장에 들어서자, "자, 이제 언니는 어린이집에 가야 한단다."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 놀이를 마무리하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함께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갔다. 약간 늦었더니 주차장에 차를 세울 곳이 없다. 아내를 어린이집 앞에 내려주고 어린이집 주변 도로를 두 번 돌고 나니 주차장에 차 세울 곳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놀이터로 갔다. 손녀딸은 놀이터에서 어린이집 친구와 놀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좀 힘이 없어 보인다.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어도 반응이 영 시원찮다. 준비해 간 간식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자, 간식을 들고 가서는 쭈뼛거린다. 내가 손녀딸에게 가서, 어서 친구들에게 주라고 하자 그제야 간식을 친구들에게 건넨다. '제천'이라는 냇가에 있는 징검다리에 가 보자고 해도 싫다고 한다. 며칠 전에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 곳이라 좋아할 줄 알았더니, 오늘은 대체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보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 피곤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같이 놀던 같은 반 친구 ○율이가 바이바이하고 놀이터를 떠났다. 오늘은 스콜라 몬테소리로 몬테소리 교육을 받으러 가는 날이라, 우리도 차를 타고 스콜라 몬테소리로 향했다.
스콜라 몬테소리가 있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스콜라 몬테소리는 3층에 있는데 손녀딸은 보통 1층에 내려 1층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3층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손녀딸에게 1층에서 내리겠냐고 물었더니, 그냥 3층으로 가겠단다. 만사가 귀찮은 모양이다.
그래도 3층에 내려서는 스콜라 몬테소리를 향해 깡충깡충 뛰어간다. 교육 시작을 기다리면서 할머니한테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아내가 서너 권을 연달아 읽어 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가 손녀딸이, "○후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같이 몬테소리 교육을 받는 사내아이다. 헌데 막상 그 아이가 오자 한번 알은체를 하고는, 평소처럼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나는 못 들었는데, 힘들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수업하러 교실로 들어가자고 하자, 별말 없이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손녀딸에게, 수업 끝나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그러면 좀 더 힘을 내지 않을까 싶어서.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딸내미를 만나, 손녀딸 애착 인형 보노며 아침에 차에 둔 각종 캐릭터 인형이며를 딸내미에게 넘겨주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향했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