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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Nov 20.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31> 2024. 11. 19.(화)

딸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디선가 손녀딸 목소리가 들린다. 손녀딸은 벌써 깨어, 안방 제 엄마, 아빠 침대에 애착 인형 보노를 안고 누워 있다. 아침 6시 30분이다. 딸내미한테 물어보니, 손녀딸은 6시 10분쯤 잠이 깨었다고 한다. 딸내미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내가 손녀딸에게 다가가, "순돌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자기 발로 내 배를 차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렇게 놀다가, 손녀딸을 안고 거실로 나았다. 얇은 내복 바람으로 있는 손녀딸이 추울까 봐, 내 패딩으로 손녀딸을 감싸 주었다. 손녀딸은 내 패딩을 좋아한다. 아마도 내 패딩의 질감이 손녀딸 애착 인형 보노의 질감과 비슷하기 때문인 듯싶다. 어제 하원해서 집에 돌아와서, 내가 의자에 걸쳐 놓은 내 패딩에 입술을 대고 문지르기도 했다. 마치 보노에게 하는 것처럼. 내가 질겁을 하며 "순돌아, 하지 마. 지지야!"라고 소리치니까 다행히 곧 그만두기는 했다. 맨질맨질한 질감을 좋아하는 우리 손녀딸이다.


  갑자기 손녀딸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딸내미 말로는 어제저녁을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가 과일을 뭘 줄까 물었다. 손녀딸의 선택은 '온통 바나나'다. 접시 빈 곳이 보이지 않게 수북이 바나나를 달라는 의미이다. 아내가 고기 뭇국에 만 밥도 같이 준비해 왔다. 언젠가 손녀딸이 제 엄마에게 "할머니 소고기 뭇국이 최고예요."라고 했던, 바로 그 소고기 뭇국이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손녀딸이 이야기를 틀어 달라고 했다. 휴대폰으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의미이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손녀딸이 뭐라고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계속 못 알아들었다. 그랬더니 저쪽에 있던 아내가 '치카치카 싫어.' 이야기라고 말해 주었다. 손녀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내가 유튜브에다 '이 닦기 싫어요'라고 검색해 보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영상 몇 개가 나왔다. 그중 하나를 틀어 주고 밥을 먹였다.


  요즘은 '착한 아이 모드'를 장착하고 있는 터라, 어린이집 등원 준비가 참 순조롭다. 아침으로 바나나 3개, 소고기 뭇국에 만 밥 절반 정도를 먹었고 양치질과 얼굴 보습도 아무 문제 없이 마쳤다. 아, 옷은 한 번 퇴짜를 맞았다. 아내가 처음에 가져온, 티셔츠와 치마는 싫다고 해서 분홍색 원피스를 다시 가져왔더니 바로 오케이를 했다.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편이다.


  시간이 살짝 일렀지만, 등원 준비를 다 마쳤기에 어린이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현관에서 빨간 구두를 내가 신겨 주려는데, 손녀딸이 "할머니이, 할머니이."라고 아주 살갑게 할머니를 부른다. 할머니에게 신발을 신겨 달라는 것이다. 나는 빨간 구두를 그냥 신겨 주지만, 아내는 신데렐라 놀이를 하며 빨간 구두를 신겨 주기 때문에 빨간 구두는 할머니가 신겨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빨간 구두를 신고, 애착 인형 보노를 가방에 넣고, 캐릭터 인형들을 챙겨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자동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쌩 휘몰아친다. 손녀딸은 "안 되겠다. 오늘은 차를 타고 가야겠다."라고 했다.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더니, 날씨가 춥기는 춥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과 아내의 역할 놀이가 언제나처럼 시작되었다. 곧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8시 45분이다. 주차장이 휑하다. 역사상 가장 이른 등원이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갔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없어 아내를 먼저 내려주고 어린이집 주변 도로를 세 바퀴째 돌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럽쇼,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손녀딸 혼자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차를 몰고 어린이집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손녀딸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주차 공간이 보였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손녀딸이 간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뛰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손녀딸하고 같이 교회 조금 지난 곳에 있다고 했다.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아내가 손녀딸을 붙들어 놓고 뭐라고 혼을 내고 있었손녀딸은 흐느끼면서 울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손녀딸이 같은 반 친구 '소ㅇ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했는데 그 아이가 그냥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손녀딸은 마음이 상해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다가가면 손녀딸은 와다다다 달려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해서, 어쩌나 보려고 아내가 숨어서 보니 손녀딸은 혼자 인도를 걸어 가더란다.


  그래서 내가 손녀딸 혼자 걸어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기에 나는 몰랐는데, 나중에 아내 말을 들어보니 손녀딸이 울면서 걸어갔던 모양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손녀딸을 붙잡고 달래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아내가 달려가 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손녀딸을 혼을 냈다고 했다. 아내가 손녀딸을 혼낸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손녀딸이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혼자 막 다니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혼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그렇게 세게 혼나기는 처음일 터였다. 손녀딸도 할머니도 미증유의 일을 겪은 셈이다.


  내가 다가가자 손녀딸은 울먹이며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전화로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었던 터라 바로 손녀딸을 안아줄 수는 없었다. 손녀딸에게 할머니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손녀딸은 할머니에게 사과했다. 아내가 손녀딸을 꼭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다. 조금 있다가 나에게 오라고 했더니 손녀딸은 냉큼 내게로 와 안겼다. 그러면서 계속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손녀딸의 흐느낌에 섞여 나오는 말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자기 마음을 몰라 주었다는 말과 평소에 좋아했던 간식들을 먹지 않겠다는 말과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말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손녀딸이 먹겠다고 한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손녀딸이 그렇게도 좋아했다는, '셀레 슈크레'라는 빵집의 에그 타르트였다. 그 어떤 간식도 먹지 않겠다던 우리 손녀딸이 그   빵집의 에그 타르트는 먹겠단다. 어지간히 맛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몇 개를 사 줄까 물었더니, 4개를 사 달란다. 더 많이 사 주겠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꼭 4개를 사 달란다. 그러면서 1개는 엄마, 1개는 아빠, 1개는 할머니, 1개는 할아버지에게 주겠단다. 그러면 순돌이 몫이 없으니 5개를 사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손녀딸의 대답은 에그 타르트 1개를 잘라서 나눠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흐느기며 울먹이는 가운데에서도 식구들과 에그 타르트를 골고루 나눠 먹겠다는 맘씨 고운 우리 손녀딸이다.


  몬테소리 교육을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손녀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손녀딸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했다면서. 그렇지만 손녀딸이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혔다. 그랬더니 손녀딸의 울음이 차츰 잦아들었다. 스콜라 몬테소리 건물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의 원래의 우리 손녀딸로 돌아왔다. 스콜라 몬테소리에 가기 전, 아내가 손녀딸 옷을 사 주려고 옷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손녀딸 맘에 드는 옷이 없었던 모양이다. 가게 주인이 보여주는 꽃이 잔뜩 그려진 원피스를 보고는, 그려진 꽃의 크기가 작다며 퇴를 놓았다. 그러더니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내가 쫓아 나가, 옷이 마음에 안 드냐고 물었다. 손녀딸은, "꽃이 너무 많아 꽃밭인 줄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렇지, 옷이 꽃밭이면 안 되지. 손녀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스콜라 몬테소리에 들어가서 교육이 시작기 전까지, 손녀딸은 할머니가 읽어 주는 동화책을 얌전히 들었다. 평정심을 완전히 회복한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손녀딸과 함께 교육을 받는 아이가 들어오고 곧 딸내미도 들어왔다. 엄마를 본 손녀딸의 얼굴은 한층 생기를 띠었다. 교육 시간이 되어 손녀딸은 친구와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나와 아내는 집으로 향했다. 퇴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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