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AI가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를 다 맞혔다고요?
AI가 2025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딱 한 문제만 틀렸다고 한다. 비문학에서 한 문제를 틀리고 문학 문제는 다 맞혔단다. AI가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를 다 맞혔다는 사실은 수능 국어 영역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를 푸는 데 '문학 감상 능력'이 꼭 필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웅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I가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AI가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를 다 맞혔다는 사실은 문학 문제도, 비문학 문제와 마찬가지로 제시된 지문과 선택지 사이의 논리적 관계 성립 여부를 확인하거나 추론할 수 있으면 풀 수 있다는 말이다. 문학 감상 능력 없이도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게 마땅하고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은 철저하게 대학 입시에 종속되어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한 내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이다.
문학 감상 능력이 없어도 수능 문학 문제를 풀 수 있으니, 고등학교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의 문학 감상 능력을 굳이 키워주려고 하지 않는다. 수능 문학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능력을 쌓아 주는 데 치중할 뿐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문학에 흥미를 가질 리가 없다.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문학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터이다.
우리가 문학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에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문학 수업 시간을 통해 문학 감상 능력을 키우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삶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삭막함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지 않겠는가. 고등학교에서의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은 이처럼 막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고등학교에서 문학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교장도,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관심은 문학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그 문학 수업이 대학 입시에 유용한가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계 고등학교의 문학 수업 시간에 다루어지는 문학 작품은 철저하게 형해화하기 십상이다. 낱낱이 분해되어 수능 국어 영역의 문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요소만이 걸러져서 학생들에게 제공된다. 학생들은 이런 요소들을 바탕으로 제시된 지문과 선택지 사이의 논리적 관계 성립 여부를 확인하여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들의 정답을 골라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수시 학생부 종합 전형을 위해 문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활동 수업을 실시하고 이를 관찰하여 생활기록부의 특기사항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업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문학 수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문학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를 들어내는 일이다. 오지선다형의 수능 국어 영역 문학 문제로는, 아무리 고차원적인 문학 문제를 출제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 공감하고 아파하며 인간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소용되는 가치를 품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가 사라진다면,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문학 수업 시간에 자신이 직접 시를 써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터이다. 시를 직접 써 보는 것이야말로, 시 수업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직접 시를 쓰게 되면 시 쓰기의 어려움을 자연스레 체득할 테고 그러다 보면 문학 교과서에서 만나는 시를 쓴 시인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그 시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터이다.
또 꼭 시를 직접 써 보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가 사라진다면, 일반계 고등학생들에게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암송하게 할 수도 있을 터이다. 문학 수업 시간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암송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시는 온데간데없고 수능 문학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만을 형해화하여 남기는 시 수업보다는 훨씬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지금처럼 시 수업을 하면, 시는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뭔지 모를 이야기를 주절대는 의문투성이의 대상일 뿐이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가 사라진다면,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문학 수업 시간에 어떤 소설 전체를 읽어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터이다. 문학 교과서에 실린 어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려면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처럼, 수능 국어 영역에 소설 문제가 출제되는 한 그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수능 국어 영역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소설 전체를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능 국어 영역에 출제된 문제를 모두 맞힐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소설 전체를 읽어 보아야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변하는 이유, 소설의 시대적 배경, 인물들 간의 갈등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테고 그래야 그 소설이 주는 감동과 그 소설이 가지는 의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것들은 참고서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제공해 버린다. 학생들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것들을 파악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수능 국어 영역 소설 문제를 몽땅 다 맞힐 수 있으니 말이다.
AI도 다 맞힐 수 있는 문학 문제가 수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일은 바위를 뚫고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일과 다름없다. 고등학교의 문학 수업이, 온통 수능 문학 문제를 어떻게 하면 질 풀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등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를 들어내야 한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을 하려면 그동안 해 오던 문학 수업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교사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별생각 없이, 수능 문제 풀이에 특화된 수업을 해 온 교사들은 매우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럴 때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삶을 어떻게 학생들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 좋을 듯하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한층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