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이 깨어 있지 않기를 바라며 딸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손녀딸은 제 침대에서 폭 잠들어 있었다. 손녀딸 침대 위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딸내미에게 물으니, 냉기를 막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텐트 안 공기가 제법 훈훈했다. 요즘은 참 별 제품이 다 나온다 싶다.
딸네 부부는 출근하고 우리 부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7시 30분쯤 되었을 때, 손녀딸 기척이 났다. 손녀딸 방으로 가서, 텐트 자락을 들치고 안을 들여다보니 손녀딸이 애착 인형 보노 꼬리를 빨며 누워 있다. 밖으로 나갈까 라고 물었더니, 그냥 그대로 좀 있겠다고 한다. 그래서 손녀딸 손도 잡고, 볼도 쓰다듬으면서 손녀딸 옆에 한동안 있었다.
그런데 좀 있다가 손녀딸이, "할아버지, 나 방귀 뀌었어."라고 한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어, 그래. 잘했어. 배 속이 시원하겠네."라고 말해 주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닐 텐데, 손녀딸은 방귀를 뀌고는 꼭 자기가 방귀를 뀌었다고 신고를 한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이유를 물어보아도 속 시원하게 답해 주지 않는다. 방귀 뀌고 나서, 방귀 뀌었다고 말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는 걸까?
아내가 손녀딸 아침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해서, 손녀딸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바나나와 사과가 접시 하나에 수북하고 소고기 뭇국에 만 밥이 한 그릇이다. 거기에다 오늘은 치킨 한 접시가 더해졌다. 손녀딸은 치킨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상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내가 떠먹여 주는 걸 받아먹는 정도이다. 요즘 밥을 제법 잘 먹었는데, 오늘은 영 시원찮다. 결국 과일은 절반, 나머지는 3분의 1 정도밖에 먹지를 않았다. 어제저녁을 잘 먹었나?
손녀딸이 조금 늦게 일어난 탓에,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단발머리로 변신했기에 머리 땋는 시간은 벌었다. 요즘 옷 입기와 양치하기 등은 아주 매끄럽게 진행된다. 손녀딸이 거의 떼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사천리로 준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내가, "순돌아, 엄마 아빠한테 인사해."라고 하면서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손녀딸은 "엄마, 아빠 방귀 뀌어 줄게요. 뽕!"이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휴대폰 쪽으로 향해 약간 내밀며 방귀를 뀌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깔깔대며 웃는다. 며칠 전부터 손녀딸이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아침 인사다. 내가 봐도 귀여워 죽겠는데, 제 엄마 아빠가 보면 오죽할까 싶다. 언제까지 제 엄마 아빠에게 '방귀 뽕' 아침 인사를 건넬지 자못 궁금하다.
9시 30분 조금 안 되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주차할 공간이 좀 보였다. 다행이다. 차에서 내려 내 손을 잡고 신발장까지 이동했다. 주차장에서는 혼자 뛰어가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한 효과가 나타나는 듯싶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이들이란 언제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차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혼자 뛰어다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손녀딸 머릿속에 심어주어야 한다.
실내화로 갈아 신은 손녀딸은, 할머니를 한번 안아 준 다음, 쏜살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혼자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3시 10분쯤 되었다. 예상대로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여러 군데다. 손녀딸은 3시 50분이 넘어야 어린이집 로비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40분 정도 시간이 있다. 어린이집 주변 천변을 산책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가을비라고 해야 할지 겨울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산 쓰고 천변을 걷는 맛이 썩 괜찮다. 냇물에서 노닐고 있는 청둥오리들이 한결 운치를 더한다.
손녀딸이 나올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으로 갔다. 언제나처럼 손녀딸은, 유리문 밖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쫄랑쫄랑 뛰어나왔다. 손녀딸을 번쩍 안아 들고 차로 향했다. 준비해 간 간식은 집에 가서 먹겠다며 애착 인형 보노를 끌어안더니 보노 꼬리에 입술을 문질러 댄다.
딸네 집에 도착해서 간식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호두과자 여섯 알과 요거트와 따끈한 물이다. 호두과자를 맛있게도 먹는다. 요거트를 입 주변에 묻히며 먹는 손녀딸의 모습이 하도 귀여워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더니 요거트를 한 모금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입 주변에 요거트가 묻어 있는 제 사진을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그런 와중에도 동화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그렇게 놀고 있을 때 딸내미가 퇴근했다. 딸내미가 씻는 동안 손녀딸과 놀아 주어야 한다. 우선 말 타기 놀이부터 시작했다. 내 등에 손녀딸을 태우고 거실을 빙빙 도는 놀이이다. 손녀딸이 말타기 놀이를 지루해하는 눈치가 보이면 파도타기 놀이를 시작한다. 내가 누운 다음 손녀딸을 내 배 위에 엎드리게 찬 다음, 사정없이 좌우로 구르는 놀이다. 손녀딸이 갑자기 "보노도 데려 와야 돼.'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보노는 물속에 살잖아."라고 종알거린다. 손녀딸의 애착 인형 보노는 바로바로, 물개 인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딸내미가 다 씻고 나왔다. 딸내미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손녀딸과 더 놀아주려는데 오늘은 딱히 저녁 준비할 필요가 없다며, 아빠는 이제 집에 가라고 딸내미가 내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현관에서 손녀딸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나는 집으로 향한다. 5시 30분경이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