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원 때 일어난 일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차 한 대로 움직이자니 여러 모로 불편한 점이 있어서, '레이'라는 베이지 색상의 경차를 하나 더 구입했다. 그 차를 몰고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갔다. 손녀딸에게 차가 어떠냐고 물었다. 손녀딸은 "예쁘다. 젤리 같아."라고 말했다. 차 색깔 때문이지 차 생김새 때문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손녀딸 눈에는 차가 젤리처럼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 차 '레이'는 '젤리 카'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차에 탄 손녀딸에게 간식으로 준비해 간 솜사탕을 먹이려고 했다. 손녀딸은 솜사탕을 먹기 전에 항상 물티슈로 손을 씻는다. 그런데 차를 막 구입해서 몰고 간 터라, 차에는 물티슈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솜사탕 먹기 전에 물티슈로 손을 닦겠다는 손녀딸에게, 이 차에는 아직 물티슈가 없다고 했더니 손녀딸은 입을 삐죽이면서 솜사탕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젤리 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차가 너무 크고, 천정도 높고, 너무 젤리 같다면서 딸네 집으로 가는 내내 울먹였다.
겨우겨우 달래 가며 딸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한 손으로 짐을 들고, 한 손으로 손녀딸을 안고 딸네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서도 손녀딸의 울먹임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하고는 조금만 놀고 할머니, 엄마, 아빠하고는 많이 놀겠다며 계속 울먹였다. 옷장에 들어가기도 하고 팬트리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계속 울기에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며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간간히 말을 건네며 다독였더니 한참 만에 손녀딸은 울음을 그쳤다. '물티슈'의 부재가 만든 사건이었다.
6시 30분, 딸네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녀딸은 아직 자고 있었다. 딸내미와 사위는 이내 출근하고 아내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6시 40분쯤 되었을 때,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할아버지를 부르며 잠에서 깨더니, 어제의 '물티슈' 사건 탓인지 할머니를 부르며 잠에서 깼다. 아내가 손녀딸을 이불로 감싸 안고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어제 손녀딸이 하는 양으로 보아서는, 할아버지를 아는 체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웬걸, 그러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어제 사건을 잊은 듯했다. 평소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다만, 아내가 '젤리 카' 마음에 드냐고 물었을 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손녀딸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티슈'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가려는데, 손녀딸이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가겠단다. 뒤에 밀 수 있는 봉이 달려 있는 세발자전거다. 날씨가 좀 차가운 듯해서, '젤리 카'를 타고 가자고 했더니, 한사코 자전거로 가겠단다. 이쯤 되면 우리 손녀딸이 하겠다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모자, 장갑, 마스크, 털부츠로 꽁꽁 싸매고 자전거로 등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손녀딸이 자전거 있는 데까지 업어 달라고 한다. 나에게 안아 달라고는 했어도 업어 달라고 하기는 처음인 듯싶다. 자전거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있다. 불과 열 발자국밖에 안 된다. 어쨌거나 손녀딸을 업고 나가, 자전거 옆에 내려주었다. 손녀딸은 매우 만족한 듯했다.
손녀딸이 탄 세발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살짝 차갑다. 하지만 손녀딸은 완전 무장을 했기에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하다. 더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약간 뛰었다. 손녀딸은 더욱 신이 나는지 "더 빨리! 더 빨리!"라고 외친다. 좀 더 뛰다가 힘이 들어 슬그머니 속도를 줄였다. 다행히도 손녀딸이 더 채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가지고 있던 '하츄핑' 인형을 어린이집 가방에 매달아 달라고 했다. 가방 뒤에 이미 '티니핑' 인형 하나가 매달려 있는데, '하츄핑' 인형은 가방 앞에 매달아 달라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인형을 가방에 매달아 주었는데, 그렇게 매다는 게 아니란다. 그래서 인형을 떼내어 다시 매달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란다. 그러더니 장갑을 벗어 자전가 앞 바구니에 넣더니 하츄핑 인형을 내게서 건네받아 손녀딸이 직접 가방에 매달기 시작했다. 조막만 한 고사리손을 이리저리 놀리더니 인형을 가방에 매다는 데 성공했다. 표정이 득의양양하다. 마치 '할아버지,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듯한 표정이다. 뭐, 사실 아까 내가 매단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츄핑 인형 가방에 매달기에 성공한 다음, 어린이집으로 내달렸다. 9시가 다 되었다. 노란색 통학 버스 한 대가 도착하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신발장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기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손녀딸을 알은척하더니 어린이집 로비로 들어갔다. 손녀딸과 같은 반 아이인가 보다. 손녀딸은 실내화로 갈아 신더니, 쏜살같이 어린이집 로비로 달려 들어갔다. 손녀딸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유리문을 통해 어린이집 로비를 들여다보니 손녀딸은 이미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