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만 좋으면 만사형통인가요?
지금은 시들해진 듯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교육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한때 혁신 학교 열풍이 불었었다. 그 바람을 타고 내가 있던 지방 소도시의 여섯 개 일반계 고등학교 중 하나가 혁신 학교로 지정되었다. 그 학교가 혁신 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된 지 5년쯤 된 2019년에 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내 나이 58세였다. 그 혁신 학교로 가면 여러 가지로 힘들 거라며 말리는 동료들이 많았지만 '혁신 학교'이니 만큼 기존 학교와는 다른 '혁신적'인 면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특히 수업에 관한 모습이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전근해 간 지 일주일이 지나고 맞은 월요일.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수업 공개에 관한 회의였다. 수업 공개란 어떤 특정 교사의 수업을 동료 교사들이 참관을 한 다음 그 수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일을 일컫는다. 학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데, 전에 근무했던 학교들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형식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어떤 경우에는 수업 지도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학교는 달랐다. 각 학년별로 한 명의 교사를 선정하여 실제로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혁신 학교답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업을 공개한다니! 예전 학교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는 걸 좋아하는 교사는 없다.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서류만 그럴듯하게 꾸며 놓고 실제로는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어떤 교사가 원칙대로 실제로 수업을 공개하자고 했다면, 그 교사는 역적 취급당하기 십상이었으리라.
내가 속한 3학년부에서는 회의 결과, 내가 수업을 공개하기로 했다. 사실 회의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회의 전 배부된 그 학교의 수업 공개 원칙에, '경력 많은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는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3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 중에서 내가 압도적으로 경력이 많았기에 당연히 내가 수업 공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수업 공개를 하겠노라고 자원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1학년과 2학년은 20대 후반 교사와 30대 초반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기로 결정이 되어 나는 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혁신 학교를 운영하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경력 많은 교사가 수업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냥 계획상으로만 그랬던 것이다.
이건 좀 혁신 학교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3학년의 수업 공개 교사를 다시 선정하자고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내가 3학년 수업 공개 교사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교사들이, 내가 수업 공개를 자원했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하긴, 모든 교사가 싫어하는 수업 공개를, 그것도 제일 나이 많은 교사가 자원하다니 대단한 일이기는 했다. 정말로 자원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손을 든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학교가 혁신 학교를 운영한 이래 최고령 수업 공개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학교가 혁신 학교답게 수업 공개를 하고자 했다면 경력 많은 교사가 우선적으로 수업을 공개해야 마땅했다. 그 학교 계획에 명사한 대로 말이다. 실제로 수업 공개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경우, 저경력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는 일은 혁신 학교가 아닌 학교들의 일반적인 관행이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직원회의 석상에서 교무 부장 교사가, 다음 주부터 3학년을 제외한 1, 2학년 교실의 책상 배치를 'ㄷ 자'로 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3학년 부장을 맡으면서 3학년 수업만 했기 때문에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매우 황당했다. 그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이 만한 일은 교직원 전체 회의를 거치거나 최소한 부장 회의를 통해 결정하기 마련이다. 혁신 학교가 아닌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들에서도 말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3학년 담당 교사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1, 2학년 담당 교사들 중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누가 옷을 입혀 주면 그 옷을 벗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넋 나간 무기력증 환자같이.
'ㄷ 자' 교실 책상 배치는 '배움의 공동체'라는 배움 중심 수업을 할 때 필요한 책상 배치 형태이다. 내가 아는 한, 그 당시 그 학교에서 그런 배움 중심 수업을 하는 교사는 없었다. 일부 교사가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교사 주도의 일제식 강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제식 강의 수업을 하면서 책상을 'ㄷ 자'로 배치하면 칠판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학생들의 고통이 막심해진다. 일제식 강의 수업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책상 배치인 것이다.
그래서 침묵을 깨고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책상을 배치하냐고?, 이제부터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하려고 하냐고?' 그랬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렇다면 학생들 목만 아프지 수업 효율은 떨어질 텐데 왜 그래야 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그냥 그렇게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하고 직접 관계도 없는 일에 끝까지 꼬치꼬치 따지는 것도 좀 뭣해서 그만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관계가 있는 1, 2학년 교사들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러면서 이 '혁신 학교'가 왜 이러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 학교 역시, 그 당시까지 학교에 만연했던 '보여주기 관행'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에 다다랐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들에서 벌어졌던 거의 모든 일들이 그러했다. 알맹이가 어떻든 겉보기에 그럴듯하면 만사형통이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어야 할 이 '혁신 학교'도 그런 '보여주기 식 관행'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저경력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는데도 계획상으로는 고경력 교사가 수업 공개를 하는 것으로 해 놓으면 그만이고, 실제로는 학생 참여 수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책상 배치만 그런 수업을 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른바 '혁신 학교'조차 그 지역이었으니 내가 근무했던 다른 학교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에서 행해졌던 거의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보여주기 관행'에 충실했다. 실제적인 공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모든 교사가 한 학기에 한 번 공개 수업한 것으로 서류 꾸미기, 실제로는 교직원 친목 도모 행사인데도 교직원 연수인 척하기, 연구학교 운영 후 애초 설정한 연구학교 운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그 목표에 완벽하게 도달했다고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 작성하기, 학생들의 진로와 무관하게 현장 체험학습을 진행하고도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한 현장 체험학습을 실시했다는 기록 만들어 남기기 등등.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으니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도 않을 일을 했다고 꾸미기가, 실제로 행한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법하지 않은가.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이 바뀌려면 학교에 만연해 있는 '보여주기 관행'을 깡그리 없애야만 한다. 쉽지 않을 터이다. 교육부나 교육청 등에서 겉보기에 그럴듯한 교육 활동 결과물들을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예산 지원을 당근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또 고등학교 교사들도 별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데에 익숙한 터라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 이러한 학교의 관행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교사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이, 그들의 가슴에 불꽃을 피우는 불씨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너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