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국 Feb 28. 2023

물건과 함께 나이 들어 간다는 것

친한 친구




친한 친구


자동차 사고가 났다.

크지 않은 사고라 다행이었다.

다친 사람도 없고 차들도 멀쩡했다.

다만 살짝 흠집이 난 범퍼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고가 크게 나서 그랜저가 박살 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제는 분신이 되어버린 내 차, 그랜저가.


15년식에 9만 킬로를 탄 연식이 조금 된 차지만

이 그랜저를 타고 내 20대의 멋진 순간들을 많이 그려냈다.

단편영화를 찍는다는 꿈만 같은 순간에도 그랜저를 타고 부산을 누볐고

회사를 그만두고 실패감에 젖어있을 때도 그랜저를 타고 일산을 지나다녔다.

결혼 준비를 하며 긴장 반, 기대 반인 마음으로 수원도 누비고

신혼여행에, 신혼집 이사에, 결혼 생활을 하며 동탄을 누비고 있다.


그렇네. 그랜저 덕분에 영화도 찍었고 장가도 갔네.

그랜저에는 나의 희로애락이 다 있다.


아직 10만 킬로는 더 탈수 있는 상태지만

내가 나이 드는 만큼,

그랜저도 언젠가 폐차가 될 날이 오겠지.

사람으로 치면 죽음 같은 그런 거.

상상만 해도 울적하다.


그때쯤 됐을 때,

내가 그랜저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날에 혼자 드라이브 정도는 나갔다 와야지.

추억이 너무 많다보니 친구 하나 떠나보내는 느낌 일 것 같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그런 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

아직도 운전석에 앉아서 가만히 조수석이랑 뒷좌석을 보면,

거기 앉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와이프, 여친 시절의 와이프, 가족, 친구들, 내 영화의 스태프들, 배우들...

여기에 만약 아이까지 태어나서

우리 세 가족이 그랜저를 타고 첫 외출이라도 나간다면...

그땐 정말 큰일이다.


이미 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 같다.

내가 친구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 있겠지만

알람만큼 내 정신을 깨워주는 새벽 출근길 시동음이,

기름을 넣으면 왠지 더 빨라진 것 같은 기분좋은 질주가,

퇴근하고 집으로 올라갈 때 삐빅하고 들리는 안녕소리가

복잡한 일이 있을 때 먼저 찾게 만든다.


친한 친구 끝.

매거진의 이전글 1+1+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