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염라대왕의 거울

업경대의 탈공시적 영상과 순환적 인과

by 밍 로즈마리화나


불교 지옥과 염라대왕 : 주체적 윤회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단순한 고통의 세계가 아닌 윤회 속에서 중생의 악업을 씻기 위한 세계이다. 사람이 죽으면 자신이 현생에서 지은 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형벌이 주어지며, 그 죗값을 치르고 나면 다시 윤회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지옥 중 다섯 번째 지옥은 염라대왕이 관장한다. 염라대왕은 죽은 자들의 선악을 심판하고, 행한 업에 따라 적절한 벌을 받도록 주재하는 신적 존재이다. 그런데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윤회가 결정된다는 사실은 윤회가 절대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지옥의 거울과 현생의 거울


업경대는 염라대왕이 관장하는 발설지옥에서의 심판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죄인이 지은 악업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 거울은 망자에게 과거의 잘못을 명확히 제시함으로 죄인이 자신의 업보를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지옥은 내가 지은 업은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인과응보의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지옥으로 들어가 보자. 망자가 두려운 표정으로 업경대 앞에 선다. 그가 업경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그러면 업경대에 그가 살아왔던 모습이 비친다. 그런데 업경대가 과거의 행적을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거울과 같은 방식으로, 거울 속의 모습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인간에서 비롯한다. 비록 거울 안과 밖의 형상이 공시성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거울 밖이 거울 안에 나타나는 모습의 원인이 된다는 측면에서 업경대는 우리의 거울과 동일한 매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업경대, 탈공시적 거울


즉 업경대는 염라대왕의 능력에 의해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습을 재현 또는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앞 ‘나’가 지닌 행보를 거울에 비춤으로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나’의 업보를 전지전능한 염라대왕께서 알아두셨다가 업경대에 그 행보를 녹화 영상처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업경대 앞에 현전하는 ‘나’로 인해 업경대에 그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가 거울 안 영상의 원인이라는 점은 ‘나’는 나의 업을 거부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든다.


업경대에 나타나는 모습이 지금 아닌 과거라는 점에서 업경대 속 영상은 탈공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탈공시적 특성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인물의 심적 상태에서 기인한다. 만일 업경대가 우리가 사용하는 거울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업경대가 과거의 사건을 보이는 것 역시 실세계의 우리가 거울을 대하는 방식과 동일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진 어느 날, 거울을 보았는데 거울 안 나의 모습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해 보자. 그러면 내가 이렇게 변해버린 모습을 갖추게 된 지난날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는 과정 속에서 업경대 앞에 선 인물과 본질적으로 같은 상황이다. 거울을 본다, 기억의 자기 인식과 거울 속 모습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간극을 설명할 수 있는 과거 사건을 회상한다. 그러한 회상이 업경대에 재현된다.


결국 우리가 현실에서 거울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연상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 업경대 앞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만 업경대가 보여주는 과거의 이미지가 탈공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이유는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의 심적 상태와 과거 기억이 맞물려 지금 이 순간 재생되기 때문이다.


지옥의 거울과 순환적 인과성


업경대 앞의 심판 대상이 거울 속 모습의 원인이라면, 거울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영상은 거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하지만 망자의 생전 업보가 담긴 영상이 염라대왕 앞에서 업경대를 통해 자신의 죄를 목도하게 되는 현재의 모습과 처지에 대한 원인이라면, 또다시 현재 나의 모습은 거울 속에나타는 나의 업보에 대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영상은 거울 앞에 죄인이 서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면서 거울 앞에 서 있는 자가 죄인이 된 원인이다. 이는 죄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죄인이 업경대 앞에 서 있다는 것이 거울 속 영상을 만들었으므로 그는 영상의 원인이 되지만, 한편으로 그 영상의 사건이 과거에 나타났다는 것으로 인해 그가 죄인이 된 것이므로 과거 사건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내가 지은 업이 나의 현재를 만들고, 또 현재의 내가 앞으로 받을 업보를 결정한다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셈인데, 이것이 지옥과 업경대를 통해 드러나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