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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원 Mar 25. 2023

혼돈의 카오스: 봉천동 3인방 in 지하 원룸

수업과 숙제에 치여 살았던 대학교 1학년을 보내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매일 편도 1시간 30분씩 등하교하면서는 이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학년 겨울 방학에 나는 자취를 시작하려 계획하고 있었다. 마침 좋은 소식이 있었는데, 고 3 때 같은 반이었던 정욱이가 서울대 근처 숭실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욱아, 하루에 1시간 30분씩 등하교에 시간 쓰는 게 얼마나 아까운지 알아? 게다가 출퇴근 시간이 2호선 타지? 완전 답도 없어!” 겨울방학 내내 나는 정욱이에게 숨 막히는 2호선을 세뇌시켰고, 결국 우리는 서울대와 숭실대 사이 봉천동에 같이 집을 얻기로 했다.


자취방을 찾기 시작한 우리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개강을 1주일 남기고 방을 찾기 시작하니 방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린 자취방에 돈을 많이 쓸 형편이 되지 못했고, 저렴한 곳을 위주로 찾다 보니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주방이 없는 방을 보여주기 시작하시더니 마지막에는 창문 없는 지하 원룸을 보여주기까지 이르렀다. “내 아들 같으면 절대 이런 방 소개시켜주지 않을 텐데, 워낙 저렴한 방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한 번 봐봐요.” 아직 자취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창문 없는 방에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고, 보증금 300에 월세 35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우리는 신이 나서 계약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 개강 후 2주가 지나고 나자 창문도 없는 이 지하 원룸에 방문객이 생겼다. 정욱이와 같이 숭실대에 갓 입학한 정기라는 친구였는데, 분당에서 등하교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종종 우리 집에서 자고 갔던 것이다. 동갑인 우리 셋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독교 선교단체 활동을 함께 해 서로 아는 사이었고, 정기가 자고 가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나자 정욱이와 나는 “그냥 우리 셋이 같이 살자”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창문 없는 지하실, 원룸, 혈기 왕성한 21세 남성 셋. 그렇게 혼돈의 카오스는 봉천동 어귀에서 시작되었다.


하루는 정기가 다음날 아침 일찍 교수님과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밤 10시쯤 일찍 잠에 들었다. 정욱이랑 나는 평소처럼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1시간쯤 지나 정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쟤 왜 저러는 거야?” “글쎄…"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정기는 우리에게 소리쳤다. “야, 내가 아침에 중요한 약속 있다고 했는데, 11시까지 안 깨우면 어떡해!” 햇빛이 들지 않는 집이라 방안에서는 밤낮 구분을 할 수가 없었는데, 정기는 11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는 벌써 아침인 줄 착각했던 것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정기에게 미안하다 하고, 끄윽끄윽 웃음을 참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나 지켜봤다. 정기는 헐레벌떡 옷을 다 차려입고 급하게 뛰어나갔고,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야이, 아직 밤 11시였으면 얘기를 해줬어야지, 그 꼴을 다 보고 있었냐!” 



하지만 정욱이와 정기가 나에게 가져다준 건 혼돈의 카오스만은 아니었다. 우리 셋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술을 마시고 놀지는 않았지만, 같이 있으면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침대도 없는 방에 요를 깔고 나란히 누워 우리들은 이성친구, 연예인, 역사, 철학, 공학, 예술, 그리고 신앙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걸핏하면 새벽까지 떠들어댔다. 후에 언론홍보학과로 진학한 정기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피를 토하며 소리를 높였고, 같은 기계과였던 정욱이와 나는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기술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심오한 공학자라도 된 것처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정욱이는 또한 역사 덕후이기도 했는데, 어쩌다 그가 삼국지나 손자병법 이야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아이처럼 조금만 더 이야기해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그렇다. 나는 이 두 친구와의 생활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우리들의 멈추지 않는 대화가, 한 밤 중 함께 뛰어넘은 운동장의 담장이, 그리고 무엇보다 끊이지 않는 웃음이 내 영혼을 고양시켜 주었다. 


한편으로 이 사랑스런 두 친구와의 생활은 내게 커다란 불편함이었다. 규칙이라곤 찾기 힘든 혼돈스러운 생활이, 창문 없는 지하 자취방의 쿰쿰한 냄새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들의 맑은 영혼이 내게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균열. 봉천동 지하 자취방에서의 생활은 차근차근 규칙을 따르며 승승장구하던 나의 작은 세상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지금처럼 똑같이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 것만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떨림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내 삶을 파고 들어오는 친구들의 영향력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렇게 엄정한 규칙만이 존재하던 나의 삶에 점점 혼돈과 카오스가 물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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