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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원 Mar 20. 2023

Simple rule & Snowball effect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간단한 규칙을 따르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나에게 정해 준 규칙은 아주 단순했다. “숙제부터 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대로 놀아!” 그때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도 많지 않고 학원도 거의 다니지 않아서, 숙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야 한두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해 빨리 숙제를 마무리하곤 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그 자유와 해방감은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숙제부터” 했던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규칙을 지키는 게 어려서부터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이런 습관이 생기는데 가장 중요했던 건, 엄마가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정말로 터치하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러셨는지 미스테리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방학만 되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매일 10시간이 넘게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를 했다. 포트리스는 얼마나 많이 했던지, 100명이 넘는 “다크호스”라는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고 두 번째로 큰 베타 서버에서 누구나 아는 플레이어였다. 나였으면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컴퓨터 얼른 끄고 공부 안 해?”라고 소리를 꽥 질렀을 것 같은데, 엄마는 그러지 않으셨다. 성적이 반에서 5등 정도로 나쁘지 않아서 믿어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원이는 더하면 분명 더 잘할 수 있는 아이입니다. 공부를 더 시켜서 특목고에 보내셔야 돼요"라고 담임 선생님들이 얘기할 때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끝까지 숙제만 다 하고 나면 더 이상 잔소리 없이 “마음대로 놀아”를 철저하게 지켜주셨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던 건 뭐였을까? 그건 바로 공부를 할 때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공부보다는 노는 게 재밌었다. 게임을 하면 10시간이라도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공부를 할 때는 한참 됐다고 생각했는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도 누가 나에게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라고 다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는 내게 억지로 해야 하는 노동처럼 느껴지지는 않았고, 심지어 가끔은 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모르던 걸 새롭게 알아가는 건 그 나름대로의 기쁨이 있었고, 수학 공식을 증명하거나 기본적인 물리법칙들을 조합해서 구심력과 같은 조금 더 복잡한 힘의 계산식을 유도해 냈을 때는 희열마저도 느껴졌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혹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과학이론이나 잘 안 풀리는 수학 문제를 만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만한 선생님이나 친구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생님, 로피탈의 정리는 왜 이렇게 쓰는 거죠?” 이런 질문이라도 하는 날이면 넌 뭘 그렇게 따지냐며 그냥 받아들이고 공식을 사용하라고 혼이 나기 일쑤였다. 나는 꼬투리를 잡거나 잘난 척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냥 이런 공식은 어디서 나왔는지 왜 사용해야 하는지 궁금했을 뿐인데, 내게 그런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거나 티키타카를 하며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생활을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대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할만한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연구실적에만 관심이 있을 뿐, 수업은 그동안 가르쳐온 것들을 큰 고민 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야, 이거 원통이 굴러가는 거랑 미끄러지는 거랑 마찰력이 다른 거, 왜 그런지 이해되냐?”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토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친구들에게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묻고는 했는데, “뭐 쓸데없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 얼른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1학년 1학기가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는 교수님이나 친구들과의 학구적인 토론은 체념하고, 그냥 동아리도 좀 하면서 대학생활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스스로와의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대학생활을 즐기되, 숙제만큼은 내 힘으로 하자." 이게 무슨 당연한 얘기인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1학년이었던 2005년에는 대학교 1, 2학년이 술 마시다가 다음날 수업을 빼먹거나 친구들 숙제를 그냥 베껴서 제출하는 게 너무나도 흔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의 습관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적어도 숙제만큼은 내 힘으로 하고 싶었다. 


때때로 유혹도 많았다. 과학고를 나온 친구들은 선행학습 덕분에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도 숙제를 척척 해냈고, 신기하게도 누군가는 “솔루션"이라며 숙제의 답을 공유해서 그걸 쉽게 이용할 수도 있었다. 반면에 인문계를 나온 나는 대학수학이나 일반물리 같은 대학교 수업을 선행학습 한 적이 없어서, 빠른 진도를 쫓아가면서 격주로 나오는 숙제를 해낸다는 게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혹시… 일반물리 솔루션 나온 거 갖고 있어?” 이 한마디면 해방될 수 일이었는데,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이어온 습관 때문이었는지, 그 말을 항상 삼켜내곤 했었다. 결국 수업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1시간 반이 넘는 등하교 길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공부하면서 어떻게든 내 힘으로 숙제를 하곤 했었다.

대학 수학 교재였던 Vector Calculus. 뉴턴 선생님께서 공부 똑바로 안 하냐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지켜낸 자신과의 약속은, 1년이 지나자 생각보다 큰 결실로 돌아왔다. 공대 공부라는 게 기초부터 하나씩 쌓여야 다음 단계를 나갈 수 있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술 먹느라 수업에 빠지고 숙제를 베껴서 제출하던 친구들은 금세 점점 수업을 쫓아가기 힘들어했다. 차곡차곡 수업과 숙제를 쫓아간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실력이 붙어나갔고, 결국 기계과 156명 중에 1학년 1, 2학기 모두 1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1학년 성적을 바탕으로 학과의 추천을 받아 관정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졸업할 때까지 매 학기 학비와 약 20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워렌 버핏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큰돈을 번 비결은 복리의 마법 덕분이라고 하면서 “복리는 언덕에서 눈덩이(snowball)를 굴리는 것과 같다.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끝에 가서는 정말 큰 눈덩이가 된다”라고 했다. “숙제부터 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대로 놀아”라는 아주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 고리타분해 보이는 규칙은 결코 단기간에 대단한 결과를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력을 차곡차곡 누적시켜, 초등학교 시절 엄마와 내가 꿈도 꾸지 않았던 결과를 안겨주었다.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누적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서울대 1등과 4년 장학금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1학년의 마무리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누적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습기를 머금은 눈은 조금만 굴려도 큰 눈덩이가 되지만 습기가 없는 눈은 미끄러워 뭉쳐지지 않는 것처럼, 삶의 모든 노력과 경험도 똑같이 쌓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차이가 뭘까? 스노우 볼 이펙트는 내게 이런 질문을 품게 만들었고, 결국 이는 나의 20대를 관통하는 질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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