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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원 Apr 03. 2023

야, 우리 강원도 여행 갈까?

2006년 12월 1일, 대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며칠 남기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야, 우리 강원도 여행 갈까?"

“언제?” 

“오늘밤 막차 타고." 

“뭐라고?”

“왜? 싫어?

“아니, 다음 주에 시험기간이라… 너도 시험 있지 않아?”

“응. 근데 그냥 가고 싶어서.”


당시 나는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룸메였던 정기한테 전화가 왔다. 오전에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오후 내내 영화가 잊혀지지가 않아서 영화의 배경인 도계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4일 후에 전공수업 3과목 시험이 하루에 겹친 터라, 잔뜩 긴장하고 계획을 세워서 공부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별안간 막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1년 가까이 함께 자취를 하면서 정기의 혼돈의 카오스에 물들었는지, 잠시 고민한 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가자.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훌쩍 떠나보겠어.”


그 길로 우리는 자취방에서 만나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밤 11시 30분 도계행 무궁화호 열차 티켓을 끊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한 나는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우리 뭐 챙겨가지? 칫솔, 치약? 옷도 챙겨야 되나? 어떡하지?” 갑작스러운 여행이 허둥대는 나와 달리, 정기는 마치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너무나 침착해 보였다. “어차피 무박 2일 여행이니까, 그런 건 필요 없고…” 필름 사진을 찍는 게 취미였던 그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카메라를 챙겼고, 혹시 모를 추위를 대비해서 방에 나뒹굴던 담요와 침낭도 가방에 넣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더니 “우리 로망 있게 이거 가져갈까?”라고 하고는, 드럼 스틱과 바이올린 가방을 집어 들었다. 정기는 10대 때부터 교회에서 드럼을 쳤고, 당시에 나는 바이올린을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놈의 로망인지 어리둥절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뭐든지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청량리역에서 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계는 폐광도시로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6시간 이상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게다가 우리는 당일 티켓이라 입석표 밖에 구하질 못해 한참 기차 안에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평소였다면 불평거리였을 텐데, 그 순간에는 모든 게 즐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사실 서울 촌놈이었던 나에게는 기차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근두근 가슴 벅찬 일이었다. 거기에 밤을 새워 달리는 강원도행 입석 열차라니, 내겐 마치 반지원정대 같은 대단한 모험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원아, 밖에 봐봐!” 정기가 말했다. 와… 마치 시나리오라도 쓴 것처럼 창밖을 쳐다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대박…” “우리 다음 역에서 잠깐 내려보자!” 다음 정차역에서 우리는 정기가 가져온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 모를 어느 간이역에서, 우리는 평생 동안 “청춘”을 떠올리면 생각날 사진들을 남겼다. 새까만 하늘아래 엷게 쌓여있는 하얀 눈, 노란 백열등 불빛, 그리고 기차.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갓 내린 눈의 따스함과 피 끓는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밤새도록 달린 무궁화호 기차는 새벽 5시쯤 도계역에 도착했다. 어스름이 오를 때까지 역사 안 의자에 누워 잠시 기다리다가 조금씩 밝아오는 도계를 한 바퀴 돌았다. 오래된 탄광촌의 모습은 마치 1970-1980년 대로 돌아온 것 같았고, 텅 빈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을 그 시절을 상상하는 건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도계에서의 하루는, 아주 흥미롭기만 한 시간은 아닐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우리 일출이나 보러 갈까?” 정기가 말했다. “그래, 지도 보니까 동해역도 멀지 않던데, 지금 당장 가면 아마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린 다시 즉흥적으로 동해행 기차에 올랐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고 가까운 바닷가로 가자고 했다. 기사님께서는 추암 촛대바위가 유명하다며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셨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막 해가 떠오른 직후였다.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장면을 붙잡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그 또한 상관없었다. 바다를 노랗게 물들인 태양빛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저 이 모든 순간이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린 떠오르는 태양빛을 맞으며 드럼 스틱과 바이올린을 꺼냈다. 우리는 그것들을 들고 바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도대체 그때 우린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이불킥하게 만드는 기억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청춘의 낭만이라 여겼다. “아, 지금 이 기막힌 배경 속에 본인이 얼마나 추레해 보이는지 네가 알아야 되는데.” 우리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연주하는 사진을 찍어주면서 서로가 얼마나 못났는지 실컷 비웃었다. 나중에 정기는 그 사진들을 싸이월드에 포스팅하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바위를 두들기었고, 그는 바다를 켰다.” 

이후 우리는 동해를 떠나 영월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남은 하루를 보냈다. 라디오스타의 배경인 동강변을 걷다가 맨발로 강에 들어가기도 했고, 무심코 걷다 우연히 발견한 국제현대미술관이란 곳에 들러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에 놓인 조각상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2006년 당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어디든 무작정 발길 닿는 곳으로 향했다. 마지막엔 막차 시간에 맞춰 영월역으로 걸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는 극적인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이 치기 어린 강원도 여행 이전과 이후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철저하게 규칙을 따르며 모범생의 삶을 살던 내가, 당시로선 너무나도 낯설기만 한 충동의 힘을 처음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계로 출발했고, 일출을 보러 갈 것인지, 차디찬 동강에 발을 담글 것인지, 그리고 반건조 오징어를 사 먹을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다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었지만 - 동강에 발을 디딘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희열과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있었다. 사건의 크기 자체로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무박 2일 강원도 기차 여행은 이후에 내가 1년간의 세계일주, 두 번의 군입대, 그리고 창업이라는 도전들을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여행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평범한 모범생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찬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청춘을 함께한, 지금도 이역만리 네덜란드에서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정기가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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