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던지는 경고: 한반도는 안녕한가

by 조경일 작가
search.pstatic.jpg 클라우제비츠


19세기 군사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불멸의 명제를 남겼다. 전쟁은 국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치행위라는 말이다.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쟁을 통한 영토 장악이라면, 트럼프 미 행정부가 그린란드 특사를 임명하며 매입 의사를 노골화한 것은 자본과 정략을 동원한 현대판 영토 확장 시도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하면서 국제 사회에 적지 않은 우려를 던지고 있다. 물론 당사국인 덴마크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랜드리 주지사는 자신의 SNS에 “그린란드를 미국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자리”라며 임명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는 주권 국가 간의 상호 주권 존중이라는 국제법적 근간이 강대국의 실리 앞에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무력에 의한 침략과 자본에 의한 매입 시도는 그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타국의 영토를 자국의 패권 자산으로 편입시키려는 본질적인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의 국제정세를 보면 한반도의 생존에 더욱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트럼프 집권 이후 한미관계에서 나타난 방위비 분담금 압박과 거래 중심의 외교 기조는 그동안 한미관계의 관성에 균열을 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한국에서 관세협상으로 받아가는 투자금은 3,500억불, 한화로 약 493조 원이다. 2026년 대한민국의 1년 국가예산이 727.9조 원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다. 워낙 큰 규모의 금액이라 숫자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를 잇는 110km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500억불, 한화로 약 72.3조 원 가량 된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사실상 강탈해가는 3,500억불이면 110km 미-러 해저터널을 일곱 개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동맹국에 대한 인식은 동맹의 가치조차 시대의 흐름과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는 현재 긴밀해 보이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논리다. 현재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으나, 전쟁이 끝난 이후의 북러관계가 지금처럼 긴밀하게 유지될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가 간의 관계란 철저히 시대변화와 국익에 따라 재편되는 유동적인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영원하지 않는데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강대국의 선의나 기존의 동맹 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가능했다. 하지만 힘의 재편 과정에서 자칫 한반도의 운명을 타자의 손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강대국들이 영토와 자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신지정학적 확장주의 시대에, 분단된 한반도는 자칫 또 다시 열강의 각축장으로 다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한반도 내에서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통의 인식을 남북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군사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은 실질적인 협력에 나서야만 한다.


작금의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북측의 화답이 부재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반응에 실망하여 대화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 또한 우려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외교적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 나가는 것 자체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9.19 군사합의' 정신을 복원하고 남북 간 직통 연락선(핫라인)을 재가동하는 노력은 우발적 충돌이 군사적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장치다. 강대국들이 국경선을 지우거나 새로 긋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 시대에 남북이 적대적 대결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강대국들에게 부당한 개입의 명분만을 제공할 우려가 크다.


가장 바람직한 미래는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일 것이다. 하지만 통일로 가는 길은 현실적으로 멀고 험난하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적어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계의 형식에 상관없이 남북한이 긴밀하게 공조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코리아의 생존 전략을 거국적으로 도모하는 것만이 신지정학적 광풍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낼 유일한 출구다. 낭만적인 이야기 같지만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을 방지하려면 남북이 어떻게든 공생을 도모하는 길 외엔 없다. 생존의 기로에 선 코리아의 운명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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