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땔감
20년 전, 북한은 비닐봉지나 플라스틱컵, 페트병 등이 흔치 않았다. 물론 여전히 흔치 않아 쓰레기통에 잘 버려지지 않는다. 한때 북한에 ‘구라파’에서 온 비닐봉지가 있었다. 어떤 경로로 왔는지 자세히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구라파에서 온 비닐봉지라고 해서 흔치않으니 나름 귀한 물건이었다. 냄새를 맡으면 영락없이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다 건져진 비닐쓰레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비닐화학섬유 냄새였다. 동대문 쇼핑센터에 가서 쇼핑하면 담아주는 그런 비닐봉지였다. 당시 북한에서 유럽을 구라파라 통칭해서 불렀으니 배불리 먹는 나라의 유럽인, 즉 서구인들이 버린 비닐봉지들이었다. 북에서는 그게 나름 귀했다. 그 정도로 재질이 좋은 비닐봉지가 흔치 않았다. 냄새는 지독하게 역했다. 쓰레기를 수입했는지, 아니면 바닷가에 떠내려 왔는지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영락없이 쇼핑 후 담아온 비닐을 접어뒀다가 여러 번 재활용 한 뒤 스크래치로 글씨들이 벗겨져서 꺼칠꺼칠한 딱 그런 상태였다. 또는 바닷가에서 쓰레기로 휩쓸리다 건져올렸을법한 상태의 비닐봉지들이었다. 하지만 구라파에서 온 비닐이라고 특정해서 불렀으니 수입된 쓰레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 해변이나 심지어 태평양을 지나 북극과 남극 언저리에 까지 밀려든 서구와 동구 등 잘 먹는 나라에서 버린 비닐쓰레기들이 못 먹는 나라들에 밀려들어 여전히 골칫덩이다. 선진국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분리수거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굳이 비유하면 잘 먹는 나라에서 싼 똥을 못 먹는 나라에서 치우는 셈이다. 한국을 포함해서 기부 또는 원조한답시고 아프리카의 어딘가로 보내지는 중고컴퓨터와 전자기기들은 거의 90%이상이 쓰레기다. 이렇게 보내진 플라스틱 전자제품은 아프리카에서 환경오염과 공해로 터전이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지역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이 제품들의 용도는 부품을 뜯어서 그 중에 회로칩(chip)을 녹여서 구리 같은 광물 물질을 추출해서 파는 것 외엔 없다. 플라스틱을 태우는 냄새가 오죽 지독한가. 플라스틱 연기는 독가스다.
아프리카 가나의 현지 언어로 ‘오브로니 워우(Obroni W’awu’)’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죽은 백인의 옷(Dead White man’s clothes)’라는 뜻이다. 영국의 백인들이 기부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중고 의류를 가나에서 매우 싼 가격에 수입해온 것이다. 물론 이 중에 40%는 그냥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 언론매체 데일리메일은 “선의를 가진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재활용 수거함에 옷을 넣는다.”며 “그러나 대다수는 파티용 의상이나 참신하고 쓸모없는 운동복 등 일회성 상품이다. 결국 대부분은 쓰레기인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2023년 4월 호주 울런공대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탄자니아 섬 하나에서만 해양플라스틱에 의한 환경파괴비용이 연간 1760만 달러(235억7872만원)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어떤가?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최근 3년간(2018~2020) ‘국가 해양쓰레기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2020년에만 해양쓰레기를 13.8만 톤을 수거했는데 이 중 83%가 플라스틱이었다.
북한에서 땔감으로 사용됐던 폐타이어도 비슷하다. 북한은 대부분의 집 난방구조가 여전히 온돌식이다. 부뚜막이 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다. 요즘 한국은 시골에도 부뚜막이 거의 없다. 북한은 평양에 최근 지어진 아파트를 제외하면, 거의 부뚜막이다. 그러니 나무와 석탄이 주 땔감이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배급경제체제가 무너지면서 땔감도 당연히 부족했다. 주거지 근처 산들이 민둥산이 되어버린 이유도 죄다 잘라서 땔감으로 썼기 때문이다. 집에서 내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땔감 구하러 나무하러 산으로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식량 구하러 장사를 하든가 이삭 주우러 가든가. 겨울엔 식량보다 더 중요한 게 땔감이었다. 불을 때야 겨울을 날수 있었고, 가마솥은 물만 펄펄 끓었다. 1시간 정도 가면 구할 수 있던 땔감도 어느새 두 세 시간 깊고 먼 산으로 가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땔감 구하러 산으로 가는 일이 가끔 줄었다. 폐타이어가 북한으로 수입됐기 때문이다. 잘 먹는 부자나라에서 버려지는 폐타이어는 북한은 물론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수출된다. 일본 폐타이어가 북한에 많이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폐타이어는 나무와 석탄대비 고효율의 땔감이었다. 물론 둥둥 떠다니는 검은 먼지의 연기와 고무탄내는 역하고 역하다. 그럼에도 땔감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 폐타이어를 쓸 뿐이다. 폐타이어 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폐타이어를 기차 화물에 실어 공장으로 들어가면 공장에서 석탄대신 연료로 썼다. 예전에는 퇴근할 때 석탄을 한 배낭 메고 오던 아버지가 언제부턴가 가끔 석탄보단 가볍고, 손바닥보다 크게 토막 낸 고무 폐타이어를 가져왔다. 땔감으론 석탄보다 덜 귀하지만 고효율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져 올 석탄이 없어서기도 하다. 손바닥만 한 폐타이어 조각 서너 개면 밥을 짓고 온돌방을 덥히는데 적당하다.
폐타이어 구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철길이 있었다. 폐타이어를 가득 실은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잽싸게 뛰어나간다. 집 뒤에 공장에 들어가는 기차다. 기차는 속도가 시속 40~60정도 밖에 안 된다. 기어가듯 더 느릴 때도 있다. 그러면 잽싸게 뛰어나가 지나가는 기차에 매달려 폐타이어를 부리나케 바닥에 떨어뜨린다. 3~5분간 매달려 떨어뜨리면 1주일 정도 땔감아 된다. 챙겨간 배낭과 마대자루에 겹겹이 차곡차곡 담아서 집에 가져가면 당분간 땔감을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뿌듯하다.
2003년 12월 22일 동짓날이었다. 동짓날엔 팥죽 대신 ‘통강냉이죽’을 끓여먹었다. 말 그대로 옥수수 알맹이가 팝콘처럼 필 때까지 푹 끓여먹는 죽이다. 북에서는 굉장히 많이들 해먹는 나름 괜찮은 음식이다.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라 큰 가마솥에 한 가득이다. 하루 종일 끓여야 강냉이 알들이 팝콘처럼 벗겨져서 부드럽고 맛도 있다. 불을 지피고 부뚜막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가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배낭 두개를 잽싸게 챙겨들고 뛰어나가 기차에 매달려 부리나케 폐타이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메고 이고 지고해서 챙겨온 폐타이어를 집 부엌 밑에 쌓아두니 그 추운 연말 며칠은 거뜬히 보낼 수 있는 땔감이었다. 딱딱한 강냉이와 콩을 팝콘처럼 벗겨지도록 삶는 데는 폐타이어가 꽤 쓸 만한 땔감이다. 손바닥보다 서너 배 큰 조각 여러 개를 아궁이에 넣어두면 펄펄 잘도 끓는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폐타이어를 땔감으로 쓰면 주기적으로 가마솥을 드러내고 아궁이에서부터 굴뚝까지 청소를 해줘야 한다. 고무연기에는 재가 석탄의 수십 배는 더 많기 때문이다. 아궁이에서부터 굴뚝까지 연결되는 온돌 사이사이 공간이 고무재로 가득차고 굴뚝이 막힌다. 가마솥을 들어내고 아궁이 통로 속에 쌓인 고무 재를 꺼내기 위해 긴 쇠꼬챙이로 아궁이에서부터 온돌 깊숙이 넣어 휘젓고 나면 온 몸이 시커먼 고무재가 가득 묻는다. 그렇게 청소하고 가마솥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시멘트를 버무려 붙이고 나면 굴뚝에 연기가 잘 빠져 아궁이가 활활 타오른다.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집집마다의 굴뚝에선 예전과 달리 연기가 시커메졌다. 모두 폐타이어였다. 뭉게뭉게 하얀 연기가 아니라 시커먼 먼지가 날리는 고무연기였다. 그래서 주택가 주변의 풀잎들은 고무연기가 재로 내려앉아 시커멓게 덮인다. 환경오염이다. 굶주렸지만 청정했던 마을이 땔감으로 사용되는 폐타이어 때문에 시커멓게 오염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폐타이어가 매일같이 들어오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게 땔감으로 쓰였으면 지금쯤 마을은 검은 세상이 됐을 게다. 십여 년이 지난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 북에서 땔감은 여전히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물론 전기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여름에는 더워서 부엌 아궁이는 한동안 쉰다. 밖에서 ‘풍노’에 불을 지펴 밥을 해먹는다. 풍노는 이동식 화로 같은 것이다. 자그마한 풍노에 석탄을 올려 ‘풍기’로 적당히 바람을 넣어 불을 지핀다. 풍기는 화력을 높이기 위해 바람을 쏴주는 것이다. 여름철엔 집집마다 풍노에 밥을 해먹는데 집 앞 마당에서 다들 밥 지어먹는 모습이 살아있는 진풍경이다. 어떤 집들은 ‘톱밥풍노’라고 하는 것도 있다. 나무를 제지하고 나면 쌓이는 톱밥을 땔감으로 쓰는 것이다. 톱밥풍노는 가운데가 뚫린 원형으로 가늘고 길쭉하게 높은 게 특징이다. 톱밥을 원형 틀에 꽉꽉 다져 넣고 가운데 불을 지피면 타오르는데 연기도 덜해 꽤나 최신식 풍노로 효과적이다. 물론 풍노보다 몇 배로 비싸서 여유가 있는 집에서만 쓴다. 또 전기히터도 있다. 히터는 계절과 무관하게 전기가 들어올 때면 쓰인다. 물론 불법이다. 히터는 전기를 많이 잡아먹어서 집에서 티비 보다가 갑자기 전압이 낮아지면 “어느 놈이 히터를 쓰냐!?”고 한소리들 하기도 한다. 그만큼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같은 전선을 사용하는 주택에서는 한 두 집이 히터를 쓰면 전압이 낮아져 바로 티가 난다. 백열전구가 금세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히터는 수제로 직접 만들어서 쓴다. 그만큼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스프링같이 꼬인 선을 구해다 대충 M자형으로 배치한 뒤 진흙으로 틀을 만들어 굳히면 된다.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인덕션과 같은 개념으로 그 원리가 원조 격이라고 보면 된다. 히터는 간단한 음식을 해먹는데 굉장히 탁월하다. 출출할 때 옥수수를 구워먹기도 하고 닦아(볶아)먹기도 한다. 물론 저녁시간엔 가급적 쓰기엔 부담일 때가 많다. 저녁때 다들 전기를 쓰는데, 히터를 쓰면 전압이 내려가 바로 이웃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 11시 이후에 가급적 단출한 야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쓴다. 북한의 에너지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하지만 저마다의 주어진 환경에서 삶의 지혜를 만들어낸다.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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