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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일 작가 Jun 08. 2023

조경일 작가 "北 밑바닥은 초기 자본주의"

연합뉴스 탈북人 인터뷰


[탈북人] ⑧ 아오지 출신 작가 조경일 "北 밑바닥은 초기 자본주의"


'아오지까지' 책 쓰고 유튜브 통일공론장 운영…국회 비서관 역임

대북전단 살포 "실효성 없다"…"민주당도 北인권 관심 가져야"

연합뉴스 인터뷰 / 2023.6.3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장마당(시장)에서 휴대전화 장사해 돈 번 뒤 페이퍼컴퍼니인 기업소 명의로 차를 사서 타고 다닌답니다."


탈북 청년작가인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34)는 지난달 24일 인터뷰에서 북한 내 시장이 600개가 넘어선 가운데 그 밑바닥은 자본주의 초기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피스아고라는 유튜브 내 통일공론장으로, 인터뷰는 탈북민 출신 언론인이 마련한 종로구 공용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조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이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탈북자들은 하나원에서 3개월간 교육받은 후 방치되고 남북하나재단 지원도 받지 못한다"며 "하나원이 지역과 바로 연결해서 취업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민 가운데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비서관 출신인 그는 또 이례적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반대하고 민주당이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문답.


-- '공포의 탄광'으로 불리는 아오지에서 살았는데 생활은 어땠나.


▲ 북한을 모른다는 단적인 예가 아오지 탄광이다. 범죄자 수용소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노동자가 많은 대형 탄광 기업일 뿐이다. 아버지는 군수공장 다녔고 어머니는 탄광과 농장에서 일하다가 1998년 중국으로 갔다.


-- 왜 세 번씩이나 탈북했나.


▲ 배가 고파서 교실에 앉아있지를 못 해 인민학교(초등학교)를 1년 반밖에 못 다녔다. 12살이던 2000년 처음으로 탈북해 어머니를 만났지만 2년 후 단속에 걸려 북송됐다. 2004년 여름 재차 중국으로 와서 어머니를 만났다가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다시 나왔다. 더 잘 사는 사회를 알게 된 후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꿈을 꾸거나 최면에 빠지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먼저 한국에 오셔서 저의 입국도 도와주셨고 아버지와는 2008년 이후 연락이 안 된다.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 [촬영 최현석]



-- 한국에 정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 말투 등에서 탈북자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차별적 시선을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높이기 위해 모두가 하는 '인정투쟁'과 함께 '신뢰투쟁'도 해야 한다. 끊임없이 '북에서 왔지만, 빨갱이나 간첩 아니다. 믿어도 된다'라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탈북민 약 3만4천명 중 2천∼3천명이 제3국으로 떠났고 돌아오지 않은 이도 800명 정도 된다.


-- 탈북민 지원 체계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은.



▲ 한국에 와서 3개월간 하나원에 갇힌 채 이념 교육만 받는 것이 문제다.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자는 냉장고나 TV 하나 없는 영구 임대주택에 배정된 후 방치돼 멘붕을 겪는다. 교회나 복지시설을 통해 중고 TV와 냉장고 등을 지원받아 산다. 남북하나재단이 연간 수백억 원을 통일부로부터 지원받고도 탈북민 정착 지원을 외면하고 있어 불만이 많다. 지역 복지회관 등이 운영하는 하나센터를 늘리고 정책·심리상담·취업 등을 연계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탈북민 단체 활동에 젊은 층이 많지 않은 이유는.



▲ 탈북 청년들은 한국에서 기본 교육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한국 청년들과 인식이 비슷해 어른 세대의 활동에 잘 동참하지 않는다. 탈북민 기성세대는 맹목적인 보수지만 청년들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의식이 있어 그때그때 선호에 따라 지지 정당이 바뀐다. 직업이 없어 참가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대북전단을 보고 탈북하는 이가 거의 없고 효용성이 떨어지므로 뿌리지 말아야 한다. 만약 뿌리겠다면 북한 주민이 반감을 갖거나 숨길 수밖에 없는 지도자 비판 대신 한국의 삶을 궁금해하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경일 대표 유튜브 프로필 사진 [조 대표 제공]



-- 한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관련 일을 했는데 평소 관심이 많았나.



▲ 제가 살아온 배경을 봤을 때 정치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여서 진보 정치가 나한테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말 김두관 의원 인턴 비서로 들어갔다가 김영춘 의원 비서관과 사무총장 비서로 일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건 분단국가의 병리 현상이다. 여야 간 정책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본다. 인권 이슈는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야 하는 아젠다인데 배짱이 없어 국민의힘이 선점했다. 앞으로 민주당은 탈북민 출신 의원 배출 등 대표성을 주는 것도 해야 한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나.



▲ 2021년 12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이후 '아오지까지'란 책을 썼다. 탈북 과정, 한국사회 정착 경험, 사회 문제, 통일 등 고민했던 것을 담았다. 작년에 단체 '피스 아고라'를 만들어 세미나와 유튜브 방송 등을 한다.



-- 한국 국민이 북한을 잘 모른다고 보나.



▲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수십 년 새 북한 사회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변했는데 한국 국민들은 보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핵실험, 미사일, 독재 얘기만 함으로써 무지가 공포로 바뀌고 있다. 북한 주민들도 자기들이 세뇌당했으며 당에 충성해봤자 먹을 게 떨어지지 않으므로 스스로 살아야겠다고 한다. 배급제는 고난의 행군 때 붕괴됐다. 나도 배급받아본 적 없다.



-- 북한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 '돈주'(장마당에서 돈을 많이 번 신흥 부유층) 주도로 아파트 건설이 이뤄진다. 웃돈 주고 집을 옮기기도 하며 가구별 텃밭도 인정된다. 휴대전화 이용자가 700만명을 넘었다. 북한도 정상 국가라고 봐야 다른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개방의 전초전으로 가고 있다. 한 번에 안 열리고 조금씩 열릴 것이다. 북미 수교와 남북 정상 교류 등을 통해 국제사회로 끌어들여 종속시켜 버려야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52603090053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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