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구전|
역사, 기억 그리고 신화 사이의 관계는 역사가의 주요한 관심사다. 과거로부터 직접적으로 오는 메시지는 기억을 통해 전해진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 그 자체다. 얀 반시나는 이 논문에서 먼저 심리학자들이 기억에 관해 발견한 것을 개괄하고, 개인의 회상, 그리고 개인의 회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구전에서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기억은 내면화된 행위, 즉 ‘회상 이미지’(remembrance image)로 사건이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상은 서술 형태로 표현된다. 재현은 모방적인 행위이고 연속적인 형태 속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내포한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서술하는’ 두 가지 과정에서 감각적인 자료는 선택되거나 버려지고 재구성되어서, 그 가운데 ‘공백’(gaps)은 ‘그랬음이 틀림없어’(it must have been)라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채워진다. 증언은 반복되면 될수록 거듭 재구성되고, 어떤 정보는 생략되고 관찰되지 않았던 것들이 첨가된다. 감각적 자료를 기억하는 것은 감정에 의해서 강하게 채색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분 나쁜 감각은 무시되거나 또는 억압된다. 메시지는 기계적인 암기나 반복을 통해서 반복될수록 축약되면서 점점 더 구조화된다.
기억코드는 정신의 전체적인 작동을 지시하며, 기억코드를 이루는 주요한 세 개 차원 중 두 개는 기억 과정에서 언어(language)와 담화(parole) 사이의 연관성과 중요성의 근거가 되는 언어 코드와 일치한다. 첫 번째 차원은 언어적 표현을 준비해주는 정보와 프로그램 전체를 갖고 있는 구두 코드(verbal code, 말)이다. 두 번째는 지배적인 차원인 마스터 코드인 어의적 기억(semantic memory)이다. 이것은 인류학적으로 말하면 ‘인식범주’(cognitive category) 또는 ‘정신의 지도’(mental map)와 같다. 이 코드는 유아기에 획득되고 문화적으로 결정된다. 세 번째 차원은 시각적인 것이다. 실제적인 종목들은 구두적 표현(말)과 시각적 코드화(글)라는 이중의 코드화를 거치기 때문이다.
한번 저장된 기억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가? 기억을 방해하는 것들은 프로이트(Freud) 시대부터 알려져 왔다.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의 많은 사례는 회상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억하지 못하는 거은 코드화와 해독과정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은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이는 사건들의 라벨은 그것들을 구별하는 연속적인 표시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증인들의 회상은 정의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하나의 구술 문서가 된다. 그러나 증인들은 정보 제공에 수동적이다. 기록된 문헌은 구술 제보자보다 더 많이 편집됐을지도 모르는 적극적인 제보자의 산물이다. 구전은 모두 개인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구술사 제보자와 관련하여 기억에 대해 우리가 아는 실제적인 결과를 우선하여 알아보는 이유다.
소위 ‘생애사’의 대부분은 [완벽한] 생애사의 서투른 모방이다. 면담자들은 특정한 질문 또는 대답에만 한정되고 그 밖의 것들을 제외시킨다. 종종 제보자는 자신의 경력을 요약한 것을 생애사로 내놓는다. 여기에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다. 이 같은 문헌을 ‘생애사’로 명명해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이 명명되려면 그것은 좀 더 정확하게 좁혀진 범위의 회상을 반영해야 한다. 자신의 진정한 생애사를 되찾고자 하는 제보자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문화에서 이런 유형의 제보자는 기이한 사람이다. 그러나 생애사는 되찾아질 수 있다. 제보자가 일단 이것이 연구의 목표라는 것을 이해하고 연구자가 충분히 그리고 자주 제보자와 만난다면 완전한 생애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편집된 판본을 얻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많은 회상이 너무 사적이어서, 기억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혹은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가 번거로워서 제외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회상이 소설처럼 꾸며 지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과거를 연속적으로 기억할 수 없을 때 불안해진다. 여기에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렇게 소설처럼 꾸며지는 이야기들은 항상 원래의 이야기보다 더 ‘논리적’이 되고, 특히 제보자가 이미 나이 든 사람이라면 제보자가 현재 가진 자기 이미지에 더 잘 들어맞는다. 그러면 이러한 소설화(fabulation) 여부를 찾아내는 일은 면담자에게 달려 있다. 즉 예를 들면 논리가 너무 산뜻하다 거나, 또는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동기와 의견인 데도 제보자가 만들어냈기 때문에 다음 사건들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제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면담자의 몫이다.
다른 출처에서 나온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특정한 기억들을 찾아보거나 아주 적은 자료만이 남아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때 사람들의 기억에 똑똑 문을 두드리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관련 문헌 자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 해도 한결같이 편견이 들어간 식민지 시기 연구에 있어서 그러한 자료는 매우 소중하다. 제보자들은 종종 특정한 성격을 지닌 초기 아동기의 생생하지만 자기충족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자기충족적 기억이 일관된 이야기가 될 때 소설처럼 꾸며내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자기합리화를 위해 소설처럼 꾸며내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이는 왜곡을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쉽게 간파될 수 있다.
가정 내에서의 초기의 경험은 공적인 성격을 가진 경험보다 더 어렸을 때 일어난다. 장례식에 대한 아이의 기억은 어른의 것과 매우 다르다. 아이는 장례식 장면을 기억하지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 조리 있는 회상은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이후에 일어나는 듯하다. 가정 밖에 대한 기억은 아이가 집 밖에서 돌아다니도록 허락된 나이에 좌우된다. 그리고 그 나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내가 어렸을 때…’와 같이 보기엔 어렴풋하게 언급되는 것이 오히려 한 사람의 생애사에서는 정확한 연월일로 종종 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제보자의 현재 나이를 알면 그 연월일을 알아낼 수가 있다.
단지 생애사만이 아니라 구술사의 모든 장르에서 회상의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몇몇 변수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경험의 반복 정도, 자료의 구체성, 의견 또는 동기가 들어가 있는지 여부, 기억이 기계적으로 암기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기억되는 사건과 연관된 감정의 강도를 포함한다. 반복적인 경험이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인 종목이 추상적인 것보다 훨씬 더 잘 기억된다. 숫자는 추상적이다. 일련의 숫자들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냈거나 혹은 문제의 숫자들을 기억할 매우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그래서 구술사, 더 넓게 말하면 구전은 본래 정량적인 역사를 위해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추상적인 종목들은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예전의 규범이나 일반적인 규칙에 대한 진술도 또한 믿어서는 안 된다. 제보자들은 일반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다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주장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져온 의견을 갖고 자기 것이라고 얼마나 빈번하게 주장하는가? 게다가 사람의 기억은 자기가 갖고 있었던 의견의 모든 변화를 기록할 수 없다. 대개 이러한 의견은 차츰 무의식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자신이 지속적으로 그 의견을 갖고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믿음은 모든 인성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의견에 대한 기억은 반대로 강한 근거가 있지 않다면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경고는 동기에 대한 기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기는 의견만큼 관찰하기 어렵고 쉽게 누구의 탓으로 돌려지며 종종 무의식적이지만 의견보다 더 복잡하다. 그래서 정량적 역사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성사 연구를 위해서 구술사와 구전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기계적으로 외운 종목이 아닌 것은 항상 단순하고 간결하다.
흥미 있는 상황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잘 기억된다. 왜냐하면 감각이 더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관찰력을 떨어뜨리고 그래서 기억도 흐리게 하는 것과 같다. 대체로 즐거운 감정을 동반하는 상황은 가장 잘 기억되고 불쾌한 감정을 동반하는 상황은 잊게 된다. 사람들은 정말 ‘옛날 좋은 시절’을 잘 기억한다. 불행한 사건은 그 사람의 정신적 유산에서 매우 생생한 부분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회상되지 않는 반대의 경우가 더 빈번하다. 구술사가가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구체적이고 면밀한 질문을 한다면 즐겁지 못한 것들을 숨기려는 일반적인 경향에 능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회상은 사사롭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서 사용하는 데 적당하지 않다. 기억은 하나의 메시지다. 그것은 면담자를 향한 것이며,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더 넓은 층의 대중을 의식하고 이에 따라 그들의 자료를 고친다. 결과적으로 정리된 텍스트는 면담자와 제보자 양측의 발의가 결합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회상을 같은 방식으로 편집한다. 그들은 주장을 하기 위해서 또는 효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이 생략하고, 자료를 더 많이 재배열하고, 더 많이 재조정한다.
어떻게 개인의 회상이 구전되는가? 회상은 편집되며 자신의 개인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되는 개인의 회상은 대부분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논평이거나 또는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 정신은 기억하기보다는 불러일으키는 기억 코드와 작용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탐사하고자 연상의 가능성을 이용한다.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이야기는 그 지역사회의 지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편집되고 재구성된다. 이러한 종류의 편집은 기억코드 자체에 내재된 경향들이 확장된 것이다.
구전은 말 그대로 기억들에 대한 기억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말한 것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기 때문이다. 구전이 암송에 의존한다는 것을 볼 때 모든 암기에 구술적 차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결과적으로 구전은 그것을 전하는 언어에서 가장 쉽고 충실하게 기억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가능한 한 구전은 원래의 언어로 수집되어야 한다. 구전이 번역된 형태로만 알려진 경우, 번역된 텍스트는 단어, 표현, 이미지 등이 번역된 해당 언어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면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기억은 대체로 집합적이다. 그리고 구전의 내용은 더욱더 집합적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개인의 특수성이 많은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개인의 특수성이 역사학 전통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
구전 자료 자체는 그 편견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기억 코드를 어른들로부터, 그리고 주로 구술 자료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그것이 허구에 대한 것이건, 역사에 대한 것이건 구전 전체를 검토할 수 있다. 기억코드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지역별로 사투리가 다른 것처럼, 사회마다 다르다. 그래서 기억코드를 체계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다른 지역사회로부터 또는 다른 문화로부터 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 검토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인상에 기초한 하나의 재창조이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과 기억이 그렇게 밀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목격자들이 실제로는 서로 일치하며 또한 여타 존재하는 다른 자료와 일치하는 진술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수가 확인한 사실만을 의존한다는 기준을 발전시킨 로마인들은 법정에서 진술되는 이야기가 고의적으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모든 기억이 창조적 행위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기준은 더 현명한 것이 된다. 독립적이면서도 일치하는 진술이 더 가치 있다. 서로 모르는 증인들로부터 나온 것은 서로 독립적이라 할 수 있다. 구전의 전승 경로가 독립적이라면 그 독립성은 문헌 자료 또는 구술사에서도 같은 가치를 가진다. 독립적이지 않다 거나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자료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기 위해 근거가 되는 입증 자료로서 사용될 수 있다. 비교 문화적 검토를 통해 확인된다면 그것은 가장 확실한 종류의 증거다.
기억을 연구하는 것은 구전 연구자들에게 한 문화에서 어떤 종류의 편견이 일어나고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너무 명백하게 기억될 때는 충분히 의심을 해야 한다. 일단 의심이 들면 자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기억에 대한 연구는 모든 역사적 자료들이 시작부터 주관성이 들어 있다. 자료는 만들어지고 지각하는 행위에서 조차 이미 기대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관성은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의 당파성이야말로 역사가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더 큰 객관성에 이르게 해준다. 마로(Marrou)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역사 연구는 목격자의 주관성과 역사가의 주관성 사이의 비율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해석을 통한 과거 현실은 해당사건의 과거 현실과 같은 과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전은 사건에 대한 증인의 해석뿐만 아니라, 비록 약간의 변형이 있더라도, 이를 전승했던 사람들의 해석을 전달해주기 때문에 매우 예외적인 가치를 지닌 자료다. 즉 다른 자료의 형성보다 구전의 창조에는 더 많은 역사적 성찰이 들어가 있다.
출처: 책, [구술사, 기억으로 쓰는 역사]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