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어라는 분야를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에 접한 수많은 과목 중에서도 어느새 영어에 제일 관심이 가더군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낯선 언어라 두려움이 있었지만 계속 공부하다 보니 그 과정이 다소 고되긴 했어도 영어 자체는 좋아졌습니다. 반면 국어 과목에는 이렇다 할 큰 관심까지는 없었다 보니 저는 제가 단순히 외국어만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말하고 듣고, 글을 읽고 쓰다 보니 제 관심은 단지 외국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대방의 말과 글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제 말과 글로 제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저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언어가 사람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장치라는 것을요.
최근 처음으로 당근마켓에서 중고 거래를 해봤습니다. 예전에 주변에서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사례는 수차례 지켜봤지만 저는 그다지 내놓을 만한 물건이 없었을뿐더러 중고 거래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귀찮게 느껴져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게도 거래할 만한 물건이 생겼고, 그래서 조금은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당근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을 고려했나요?
게시판에는 잠깐 사이에도 수많은 판매글이 쏟아졌습니다. '와, 이런 것도 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물건이 있었죠. 전문적으로 상품을 파는 업체가 아닌 일반인 사용자가 대부분이니 판매글마다 게시자의 특성도 각양각색으로 다 다르게 드러났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해서 팔아요"라는 식으로 판매 이유를 적은 글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판매하게 된 이유를 보면 물건의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마치 입사 지원할 때 '지원 동기'를 쓰듯이 사적인 '판매 동기'를 적은 글이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한편 뜻밖에도 물건의 상태를 상세히 적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상당히 고가의 물건임에도 "~ 팝니다"가 설명의 전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글을 보니 이전에 구직 사이트에서 봤던, 채용 공고에 업무 내용을 전혀 적지 않아 도무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구인글들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모두 대상 독자와 글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작성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통과 배려, 그리고 칭찬
구매 문의 채팅을 받으니 이번에는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의 입장에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빠르게 연락했던 문의자는 다짜고짜 "~원에 구매하고 싶네요"라며 제가 올린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격 제안 불가' 조건으로 글을 올렸기에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제가 올린 물건의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별말 없이 들어주었습니다. 약속을 잡았고, 저는 처음으로 시도한 당근마켓 거래를 단시간 내에 성공리에 마칠 생각에 나름의 뿌듯함과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약속을 불과 두어 시간 남겨놓은 시점, "당근!" 하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경쾌하지 않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렇게 첫 거래 약속은 불발되었습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분의 사정을 굳이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이런저런 정황을 따져 가며 제멋대로 뻗어나갔고, 괜스레 초조한 마음에 애꿎은 애플리케이션만 수십 번 들락거렸습니다.
마음을 반쯤 내려놓은 다음날, 자고 일어나 보니 아침 일찍부터 구매 문의 메시지가 두 건이나 와 있었습니다. 저는 채 다 뜨지 못한 눈을 비비며 황급히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하나는 단순히 구매할 수 있냐고 묻는 메시지였고, 다른 하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로 시작되어 구매자의 사정을 설명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혹시 직접 사용해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해도 되겠냐는 것이었죠. 그는 이전에 물건을 바로 샀다가 막상 돈을 지불한 후에 하자를 발견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직접 사용해 보는 것까지는 사실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받기 전에 먼저 직접 상태를 확인해 보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응하지 못할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구매자보다 먼저 문의를 준 사람이 있었죠. "구매할 수 있나요"라는 간단한 문의만 남겼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사람에게는 약속 일정을 잡자는 답장을 보냈고, 두 번째 사람에게는 사정을 설명하며 만약 앞사람과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연락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얼마 뒤, 두 번째 사람에게서는 알겠다는 답장이 왔지만, 첫 번째 사람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워낙 이른 시간에 메시지를 받아서 저도 몇 시간 뒤에 답장한 터라 묵묵히 기다렸죠.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메시지를 확인한 후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다시 문자를 보내봤지만 소용없었죠. 1시간 정도 더 기다려 보다가 두 번째 사람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금 경쾌한 알림이 울렸습니다. 어라, 이번에도 두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아까 제가 보냈던 마무리 멘트를 그쪽에서 읽고 나서 추가적인 답장 없이 대화가 마무리되었기에 아직은 더 할 말이 없었는데 말이죠. 메시지는 뜻밖에도 "친절하시네요.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죠. 하지만 어쩌면 칭찬에 가장 춤을 잘 추는 생물은 고래보다도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평소에 예의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특별히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지 않는 이상 서로 기분 좋게 대화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아까 두 번째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할 때도 마땅히 해야 할 응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친절하다는 칭찬을, 그것도 대화가 일단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 지 몇 시간 후에 받으니 얼떨떨했습니다. 당연히 기분도 좋았죠. 첫 번째 사람에게서는 여전히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사람과 거래 약속을 잡았습니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안녕하냐는 인사부터
두 번째 문의자에게서 뜻밖의 메시지를 받기 전, 저는 첫 번째 문의자의 '읽씹'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소위 '진상'에게 시달렸다며 힘듦을 호소하는 사용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여러 의견 가운데서도 "'안녕하세요' 인사도 없이 대뜸 자기 할 말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라는 의견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랬습니다. 저는 판매글에도, 채팅에 답장할 때도 '안녕하세요'로 시작했지만, 저와 대화한 세 명 중 안녕하냐는 인사로 대화를 시작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요. 저는 당근마켓을 이번에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애초에 물건을 사고팔기 위한 플랫폼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의외로 이 부분을 기분 나쁘게 여기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또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겁니다.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인데 뭐 굳이 격식을 차리고 예의를 따지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오히려 비즈니스 관계이기 때문에 격식을 차리고 예의를 따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업자와 고객이 아닌 일반인 사이의 중고 거래라도 잘 팔고, 잘 사기 위해서는 예의가 중요하니까요.
고작 중고 거래 한 건 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말과 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오고 갑니다. 이번 글을 쓰다 보니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말과 글, 즉 언어에는 정말 강력한 힘이 있지요. 앞으로도 저의 언어가 저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언제나 행복한 기운을 전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