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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연 Dec 01. 2023

긍정의 힘


  "뭐 어쩌겠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래도 애는 밝아. 참 긍정적이라니까."


  긍정이라는 표현은 흔히 낙관과 비슷한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내가 긍정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부정이라는 단어에서 긍정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그런 모습을 본 언니가 따가운 일침을 날렸다.


  "그래, 그럼 계속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아."


  아얏, 정말 침에 쏘인 듯 마음이 뜨끔하고 아팠다. 훅 하고 밀려든 부끄러움 고개가 절로 수그려졌다. 그때부터 나는 "Look on the bright side,"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밝은 면을 찾아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긍정의 탈을 쓴 낙관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서든 좋고 즐거운 면을 찾아내고, 미래에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낙관에는 분명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 낙관주의를 견지하는 사람은 세상 풍파가 휘몰아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또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 없이 목표를 이루기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글프고 황망한 일을 두고 억지로 억지로 좋은 일이라 우겨서 내 마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무척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자신을 속이는 느낌마저 든다. 무작정 저지르는 낙관은 결국 지금의 솔직한 감정과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하는 행위인 탓이다.


  긍정낙관과 다르다. 긍정은 어떤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좋다고 여겨지는 일이든 나쁘다고 여겨지는 일이든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수용한다면 그것이 곧 긍정이다.


  때로는 자꾸만 걱정과 불안에 빠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초조함마저 이는 순간이 있다. 불안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 마음대로 안 다. 바로 이럴 때 낙관보다는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이미 비관적인 생각과 감정이 마음을 점령한 상황에서 당장 어떻게든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면  반작용으로 거부감만 들 뿐이다. 나의 비관적이고 불안정한 모습,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면조차 긍정하고 수용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로소 일말의 평화를 찾는다.


  최근 한 친구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많은 일을, 그것도 열심히 하지만 야속하게도 일은 자꾸만 틀어졌다. 그러니 자연히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친구를 달랬다. 괜찮으니 마음을 내려놓자고 했다. 며칠 뒤, 친구는 또 예의 그 걱정을 이야기하며 그때 내게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란 말을 들었지만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안 그래도 걱정과 심적 부담이 가득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해 이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려놓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러했고, 그렇게 했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비관적인 생각이 꾸물럭대며 올라올 때,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못 본 척할 때, 어둡고 진득한 그림자는 쉬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런 내 모습을 그냥 인정해 버렸다. 나를, 내 감정을 긍정했다. 어둡고 진득한 감정이 내게 스며들어 나를 뚫고 지나가도록 허용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마법처럼 밝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내 감정을 부인하는 데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풀리고 틈새로 마음의 여유와 편안이 미세하게 찾아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쓸데없이 나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긍정의 힘을 활용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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