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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14. 2024

얼어붙은 창문을 열어 마음을 환기해 봐요.

내 마음의 보물상자를 만들다 (2)

 경계는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 경계를 넘는 곳에 비로소
자유와 진정한 발견이 있다
ㅡ Hermann Hesse ㅡ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감을 원한다. 자유보다는 같은 일상, 같은 루틴, 비슷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새로움은 에너지가 든다. 익숙한 것을 할 때는 머리 보단 몸을 움직인다. 기실 그것이 편안하다. 이는 개인의 일상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기학적인 무늬처럼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두드러지지 않았음에 안심한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일종의 공포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다름을 지적받는 순간, 스스로의 <별남>을 반성해야 한다.


“답지 않아”

인생에서 답지 않단 말을 네 번 들었다.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그 한마디의 말이 날카롭게 마음에 상처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1. 열두 살 때 아버지 장례를 치른 봄. 하교길 친구의 한 마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넌 왜 웃어?”

2. 스물여덟. 강의를 뺏고 싶었던 대학원 여왕벌이 전화로 한 폭언. “가난하면 거지처럼 조용히 졸업해. 답지 않게 나대지 말고.“

3. 서른셋.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 거실에서의 말씀. ”어머니 혼자 밑에 컸는데 어두운 티가 안 나는구나.“

4. 그리고 마흔 하나. “아이가 자폐진단받았는데, 그런 거치곤 참 성격이 밝으시네요. “


놀랍게도 다 직접 들은 말이다. 미숙해서 대꾸를 못한 2번의 기억은 아직도 아리다. 상대가 무례한걸까? 아마 말한 사람은 이미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저 칭찬일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다. 나다운 게 뭐지? 사실 눈물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뿐이다. 우울하고, 희망도 없고, 절망하며, 어두워야 할까? 그게 상황에 주어진 울타리 안의 나다움일까? 가난했지만 그림을 좋아했고, 아이가 장애등록했어도 낙관적이다. 여전히 공부하고 글을 쓰며 꿈을 쫓는다. 수채화를 그리고 정원을 가꾸면 행복하다. 상황은 나다움을 결정할 수 없다. 본질은 그게 아니다. 나다움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다.


하지만 세상은 <상황에 맞춘 다움>을 강요한다. 경계 안에 맞는 모습을 강제한다. 마치 겨울에 난방을 하면 pvc물질 때문에 오히려 실내공기는 나빠지는 것처럼. 오롯이 <헌신하는 어머니>이기에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은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옭아맨다.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으니 선택은 유보되고 경계는 더 단단해진다. 존경과 칭찬은 보상이 되어 따듯한 공기를 채운다. 그 공기는 깊은 밀도로 나에게 속삭인다. “너답게, 잘하고 있어!”


그럴 때, 마음의 창문을 연다. 겨울의 창밖은 춥고, 도시의 매연으로 채워져 있다. 결코 안전하지 않다. 창문은 얼어붙어 열기에 쉽지 않다. 하지만 안전한 경계는 주의하지 않으면 독이든 보물상자가 될 것이다. 문을 열어 새로움을 마시고, 경계를 열어 나의 공간에 신선한 경험을 채웠을 때, 진짜 숨을 시원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때로는 아무리 아끼고 좋은 마음의 보물상자도 환기하는 것이 필요해요. 속을 시끄럽게 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유해물질 같은 타인의 말들을 창문을 열어 환기해 보심 어떨까요?


표지사진출처: 픽사베이 


이어지는 글 

1. 상실의 시대, 스노우볼의 온기

2. 얼어붙은 창문을 열어 마음을 환기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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