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인생의 정원에서 가장 느린 꽃을 키우다
[엄마]
[보고싶어요]
작은 손가락이 갤럭시탭의 이미지를 누른다. 설정된 기계음인데도 아이 목소리 같다. 마음을 울리는 두 단어. “엄마” “보고 싶어요”. 작년 가을, 이 아이를 만난 지 일곱 해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들은 아이의 보고 싶다는 이야기. 그래, 엄마는 늘 네가 보고 싶었어. 네가 옆에 있어도 늘 보고 싶었단다.
누가 알았을까. 서른다섯 살에 만난 너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이리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을지. 그리고 그 시간을 울보인 내가 이렇게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었을지. 그 순간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 흔하디 흔한 그 한 마디.
영유아발달 책을 보면 대부분의 첫 발화는 [엄마]라는 단어다. 대부분 돌에서 두 돌 사이에 말이 트이고 늦되는 아이들도 세 돌을 기점으로 말을 한다. 우리 조카도 그랬다.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이에게 엄마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4kg 아이를 아기띠에 매달고 시내버스를 타고 환승하여 대학병원문을 두드렸던 눈물 많은 두 돌 아기 엄마에서 이제 낭랑한 목소리로 노련한 치료사처럼 플랜을 짜고 상담에 임하는 무발화 자폐성장애 아동의 ‘어머니(=프로매니저)’ 가 된 지금까지, 지난 6년간 우리는 언어재활치료를 쉰 적이 없다.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워]란 책 속의 주인공처럼 내 아이도 언젠가 날 불러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기적처럼. 하지만 같이 느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유독 더 느린 아이가 바로 내 아이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AAC나 PECS를 배우면 말 트이는 게 더 늦어질 수 있어요. 어머니”
나는 아이와 말하기가 정말 간절했다. 구어에 의한 의사소통이 정말 힘들었기에 그림이나 사진으로 의사소통하는 보완대체의사소통을 가르쳐주는 언어재활사를 계속 찾았다. 하지만 매번 만나는 언어재활사는 구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 5세에 자폐성장애등록을 한 아이는 아직 고갯짓이나 가리키기(포인팅)으로도 대화가 어려웠다. 요구는 늘어가는데(그 요구가 더구나 ‘배고프고, 아프고, 졸리고’ 등의 기본 욕구와 관련된 요구임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는 점점 떼가 늘고 울음도 늘었다. 답답해서 둘이 그저 붙잡고 통곡을 하며 운 적도 많았다. 매번 아이가 울면 서너 가지의 대안을 갖고 “밥 줄까?” 물으며 밥을 차리고 “나가고 싶니?” 물으며 운동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든 대안이 아이 딴에는 다 아니고 그저 울고 울고 또 울 때도 많았다. 가장 곤란할 때는 아플 때였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은데 어디가 안 좋은지 아이도 나도 잘 모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무엇보다 아이와 소통하고 싶었다. 그것이 “엄마”라 불러주는 예쁜 목소리가 아닐지라도.
“구하라, 얻으라, 그리고 앞으로 내딛으라”
매일매일 알아보았다. 보안대체의사소통(AAC), 그림카드의사교환(PECS) 키워드를 검색하고 당시 배우고 있던 언어재활사에게도 병행이 가능한지 계속 문의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구어(말하기)가 가장 경제적이라며, 카드를 쓰면 오히려 말하기의 의도가 떨어져서 말하는 게 더 늦어진다고 말하는 센터가 많았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난 아이와 조금이라도 매일의 생활에,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으니까. 센터에서 신규아동 모집글을 블로그에 보게 되었다. 바로 상담신청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초기상담에서 선생님의 방향성이 나의 소원과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 아이를 맡겨보자 생각했다. “어머님, 구어는 의사소통의 30%만 차지해요. 아이의 표정, 제스처, 그 모든 것이 의사소통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의사소통의 의도를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분이 아이의 열번째 언어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말하지 못해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 뒤로 아이는 ‘가리키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짚을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천천히 아이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언어카드로 [O]와 [X]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물어 보았을 때, 카드로 [예], [아니오]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아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수용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기본적인 것을 카드로 익히고 나서는 [마이토키]라는 기계를 쓰게 되었다. 기계 속의 어린아이 음성이 내 아이의 목소리가 되었다. 마치 말을 배우듯 아이는 사용법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 뒤로 아이는 [신나], [졸려], [짜증 나], [쉬어], [아파], [맛있어], [맛없어] 등 다양한 추상적 상태에 대한 표현을 마이토키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면, “엄마를 부를때 꼬집으면 아프지? 이러면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잘못한 거야.”물으면 마치 정말로 말을 하듯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천천히, 시무룩하게)... [네]를 누름”이 가능해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익히고 사용하게는 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진 않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편한 의사소통 수단이 ‘말’이라는 걸 매일 쉴새없이 ‘말’하는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을 세계. 그 쉽고 편한 ‘말’을 두고 카드를 꺼내고, 기기를 꺼내야 하는 일상이 번거롭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울고 떼쓰며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아이는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마치 터질 것 같은 풍선 같았던 아이의 상태가 작은 ‘소통의 틈’이 생긴것만으로도 훨씬 안정되었다. 나도 내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1년 뒤, 우리는 나라의 ‘발달장애활동지원’이란 바우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이는 24시간 엄마랑 붙어 지내다 2-3시간 떨어져 지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그리움’이란 감정을 느꼈나 보다. 마이토키로 어느 날 언어재활 수업시간에 치료사 선생님께 먼저 누르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엄마] [보고싶어요]라고. 대기실 밖에서 들리는 그 작은 기계음에 난 오랜만에 울었다.
어느새 기적은 내 옆에 와 있었다.
굽이굽이 고비고비 함께 손을 잡고
올해 봄, 치료실에서 시행한 수용어휘력 검사에선 수용언어는 생활연령 대비 1.5세 지연으로 나왔다.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아이는 다 듣고 있었구나. 많이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만큼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없기에“ 힘들었구나.
다시 또 다른 숙제가 나에게 주어졌다. 수용(인지)과 실행(계획)의 크나큰 간극이란 숙제다. 여전히 난 아이의 의미 있는 목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래도 이제 아이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목소리가 될 거 같은 예감이다.
어느날, 우리의 평범하고 느린 일상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이야기할 것이다. 그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뿐.
우리는, 스페셜한 인생에서
평범한 일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