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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10. 2024

어찌 참았을까? 왜 이제야 쓸까?

글쓰는 이유, 써야만 하는 이유 (3)

누구나 알 수 있는 형태로 머무른 전환의 시기에 난 머물러 있다. 인생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마디와 마디 사이에 있는 셈. 전환은 필연적이었고, 그 끝에 시작된 건  글쓰기였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글들은 때론 거칠고 날카로웠다.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관계를 움직이게 했다. 글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환1. 건강. 2년전 건강검진 결과에서 당화혈색소가 높아 추적을 요했다. 일단 몸무게 감량부터 시작했다.

전환2. 삶의 중심축 이동. 아이와 재활이 나와 가정의 중심이었다. 그 무게추를 천천히 옮기는 작업, 운동과 공부를 시작했다.

전환3. 공간과 관계의 실제적 변화. 이사를 했다. 인간관계가 물갈이가 되었다. 오랜 친구는 떠나고 새로운 만남이 이어졌다. 아이러니한 건 전환기에 만난 인연들은 전환기 안에서 다시 떠나갔다.

전환4. 창조적 삶으로의 도전. 오랜 소망이었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은 나를 평안의 세계로 머물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명상을 통해 마음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글쓰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절대 가볍지 않았다. 글은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전환의 종결이다.

전환5. 결국 이 모든 마디는 <결혼전의 나>를 일깨웠다. 모든 경험은 결국 봉인되었다 다시 재생함을 깨닫는다.


글은 진실을 말하는가. 은유는 진심을 반영할까. 진심과 진실 사이에 어디에 존재하는가. 글을 쓰는 순간, 도피처를 스스로 부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었다. 멈춰 있던 생각을 깨웠다. 갇혀 있던 울타리를 벗어나 만남과 상실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제 자리에 섰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혼은 그대로인데 껍데기가 바뀐거처럼. 아니, 영혼조차 이전과 달랐다.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다. 갓 깨어난 어린 뇌는 수없이 부딪히고 재생되어 다시 원래의 나이테를 새겼다. 뿌옇던 자기인식을 걷어내니, 모든것이 선명해진다. 안개에 가려졌던 감정이 드러났다. 오만에 대한 부끄러움, 도전에 대한 망설임, 규칙에 대한 혼미함, 성취의 기쁨, 상실의 슬픔, 오해의 아픔이 혼재되었다. 감정을 직면한다. 꾹 내리눌러 내내 참았던 감정이 글이 되어 터져나간다. 옛 상처의 고름을 짜내듯 글이 제멋대로 써진다.


어찌 참았을까? 왜 이제야 쓸까. 겹겹이 드리워진 마음의 굴레를 다 벗겨야만 쓸 수 있었다. 아픔을 직면하기 두려워 그저 <괜찮다>의 세 글자 안에 모든 것을 담았기에. 이제, 하나씩 뒤죽 박죽 쌓인 감정을 꺼내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바라본다. 느리게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안아준다. 괜찮니, 하고 묻고 그저 안아준다. 먼지 쌓인 묵은 감정은 순서를 따지지 않고 손에 잡힌다. 손에 잡힌 감정이 하나하나 글이 되어 간다. 천천히 바라본 나의 마음을 기록한다. 그렇다. 그저 지금은 터져나오는 것들을 차례로 기록한다.

상처가 전부 다 낫는 순간이 온다면, 그리하여 새살이 돋아난다면. 기록의 치유과정을 끝내면, 무엇을 쓸수 있을까.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삶 속에서 모조리 낱낱이 적어내리는 상처의 은유가 언젠가 끝난다면, 맑음의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삶을 은유하면서 천천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언젠가는 쓰고 싶다.


photo by 인생정원사 


이어지는글

1. 단문생활자에서 복문생활자로

2. 아보하, 스페셜한 인생에서 평범을 꿈꿔요.

3. 어찌 참았을까? 왜 이제야 쓸까?

4.헤르만 헤세 아저씨, 저 오늘 뭐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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