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경계와 프레임 사이 (4) : 약속
상처는 빛이 당신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이다
- Rumi -
오늘 난 병원을 가지 않을, 결심을 했다.
한 때 너무 아파서 어디라도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할 때, 통증이 밀려왔다. 더 이상 일상이 견디기 힘겹다 느낀 순간 병원을 갔다. 원만한 치료를 위하여 제공되는 따듯한 서비스에 기대면,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조금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물론 몸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니 병원에 가면 <당연하게도> 나아졌다. 낫는다는 것은 정말 달콤한 열매였다.
아이 진료에 기대다 내 진료까지 보게 되었다. 몸이 아플 땐 주로 한의원과 재활의학과에 갔다. 10년 만에 피부과도 갔다. 주기적인 예약에 다이어리는 빼곡히 가득 찼다. 아픔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 그 관심과 따듯함은 환자이기에 제공되는 <상호-계약>의 것이었다. 일방의 관심이었기 오히려 편했다. 내가 무심하든 예민하든 상관하지 않는 종류의 다정함이었으니까.
아픔은 참으로 다양하게 찾아왔다. 관계의 상실에 직면했을 땐 두통이 왔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겪고 나면 손발이 저리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일상의 균형이 깨지기라도 하면 온몸이 못을 박은 거 같은 아픔이 찾아왔다. 몸의 아픔은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했고, 마음의 고통은 몸이 견디지 못해서 나타났으리라. 아픔이 어디서 출발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당장의 땜질 같은 다정함에 기댔다. 그러면 다시 집에서 일상을 씩씩하게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였다.
하지만 시간은 관계를 쌓는다. 일방의 다정함은 때로 양방이 되기도 한다. 가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했다. 병원, 나는 <경계의 선> 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피부과 원장님께 묵주를 선물 받기도 했다. 지금도 매달 가면 진료가 아닌 따듯한 말씀을 나눠주신다. 재활의학과 물리치료사 선생님과는 응원의 우정을 쌓았다. 마치 20대 시절처럼 치료를 받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벼운 대화의 순간에는 인생도 오롯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옛지인이던 정신과 선생님께는 친정엄마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병원을 <순환하며> 고통은 서서히 희석되었다. 그러나 양방의 다정함은 현실의 고통을 상기하게 했다. 병원 안도 인생의 일부였다. 진심 섞인 다정함은 유상으로만 얻을 수 있었다. 차라리 나았다.
이제 스스로 고통에 직면하고자 한다. 또 아프면 병원에 가겠지만, 그때는 다정함이 아닌 치유에 집중할 것이다. 그래도 머무를 수 있게 해 준 <처방의 공간>에 감사한다. 그러나 유상과 계약이 아닌 진심의 관계는 병원 밖 일상에서 쌓아나가기로 결심한다.
오늘 난 일상과 치유, 그 경계의 틈에 있던 병원과 이별하기로 했다.
photo by 인생정원사
이어지는 글
1. 길고양이들의 인터스텔라
2. 맹목의 공간을 경계하다
4. 병원, 가지 않을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