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명상 : 온기가 그리울 때, 에스프레소 기차를 타요.
크림이 더해질 때,
커피는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온전히 혼자 있음이 어떤 날은 견디기 어렵다. 그런 날은 커피마저 삼키기 어렵다. 시원스레 마음이 불을 꺼주던 아메리카노의 그 쓴맛이 때때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자극적으로 위벽을 훑는 카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날, 1샷의 에스프레소도 벅차다.
그런 날은 어떤 날일까. 마음이 차갑게 내려앉은 날이다. 온기로 데워지지 않은 무정의 마음. 관계의 변화에 대한 실망으로 차가워진 낙관의 순간. 커피는 그 어느 약보다 쓰게 느껴진다. 따듯한 집이 평소보다 넓게 느껴지고, 기꺼운 마음으로 하던 일들이 손가락 끝에서 완성되지 못한 채 헝클어진다.
도저히 못 견디게 힘들면 집 근처 에스프레소 바에 가서 “콘-판나” 한잔을 마시러 간다. 스탠딩바에 서서 마치 대낮에 시키는 술처럼 멋스럽게 주문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여는 빌라골목의 이 에스프레소집은 이른 9시 30분 시간임에도 북적거린다. 끊임없이 주문이 들어오고 나간다. 잠든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와서 큰맘 먹듯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서 밀린 수다를풀어놓는 젊은 아기엄마. 우아한 클로슈햇을 쓰고 꽃무늬블라우스를 입은 50대 아주머니는 늘 비슷한 시간에 만난다. 그녀는 늘 “오네로소”만 주문하고 조용히 한잔 하고 있다. 바쁜 배달기사도 오전에는 조금 한가하니 가볍게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떠난다. 조금 뒤면 이른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이 한 무리 올 것이다. 아침과 점심시간 사이 조금 한가한 틈에 30분 정도 들리는 곳이다. 북적거리는 소음 사이에 오롯이 혼자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온기가 매력적인 나의 작은 아지트.
“콘판나 나왔습니다. 91번 손님.“
아, 나의 콘판나가 나왔다.
이 크림 에스프레소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위에 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와는 다르다. 온전한 하나의 샷 위에 같은 양의 크림에 얹어져 있다. 크림은 참 재밌는 존재다. 쓴 커피 위에 얹어져 있지 않을 땐 그 자체로는 솔직히 느끼하거나 미끌거리거나 그저 부드럽기만 하다. 크림은 어떤 누구하고나 어울리지만 단독으로는 친해지긴 어렵다. 가끔은 휘핑크림의 형태로 매우 달게 잔뜩 올라가기도 하는데, 여기의 크림은 조금 다르다. 매우 부드럽고 진한 우유빛의 크림은 쓰고 진한 에스프레소 잔 위에 얹어져 함께 마실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깊은 쓴 맛과 진한 부드러운 맛이 한데 입속에 머물렀다 사라진다. 양이 많지 않지만 혀끝의 달콤함이 남아 있어,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이 더 이상 쓰지 않게 느껴진다.
인생이 너무 쓰게 느껴질 땐, 작은 크림의 온기를 더해보면 어떨까. 헬렌 켈러는 “인생의 잔에는 쓴맛과 단맛이 함께 담겨있다”고 했다. 어차피 쓴 맛을 마셔야 한다면, 그런데 받아들이기에 <내가>연약하다면, 그렇다면 소소한 크림을 얹어보자. 크림은 다정한 대화일 수도 있고, 작은 갤러리의 그림일 수도 있다. 뜻밖의 만남일 수 있으며, 선물 받은 책 한 권의 글귀일수도 있다. 그저 이 달콤한 크림에스프레소를 먹는 그 순간일지도. 인생에서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나면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작은 행복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쓰디쓴 인생도 기꺼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은 커피 한잔의 온기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온전히 맛을 느끼고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쓰디쓴 인생이더라도 오늘은 조금 더 달콤한 하루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photo by 인생정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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