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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Dec 29. 2023

나의 산티아고_4

라에스피나에서 보레스까지

Day3 라에스피나에서 보레스까지

         LaEspina ~ Boress, 28km–40,218걸음     


10월 24일, 스페인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이다. 매일 아침을 여는 미라클 모닝 시간이 스페인에서 함께 흐르는 것 같았다. 4시 50분이 되니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침낭 안에서 꼬물꼬물 해보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무거운 배낭을 잘 못 멘 탓인지 어깨가 짓눌리고 골반까지 욱신거리고 아팠다. 그런 날 참 잘하고 있다고 더 따뜻하게 셀프 허그하며 꼭 안아 주었다. 아침은 알베르게에 있는 코코아 한잔과 어제 지치도록 먹다 남아서 포장해 온 쇠고기 스테이크를 다시 구워서 아침 식사로 대신했다. 여전히 입에서 살살 녹는다. 어제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걸은 탓에 오늘 출발은 여유를 부려본다. 무릎 보호 테이핑 붙이고 피로를 날려줄 비타민도 챙겨 먹었다. 배낭의 짊들을 정리하고 제이콥에게 가방 메는 법을 다시 찬찬히 배웠다. 배낭을 멘 후 어깨에 스트랩을 한껏 당겨 잘 조였다. 한결 가볍게 느껴지며 내 몸과 혼연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시 이제 출발이다. 밤사이 내린 비로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맴도는 가을 날씨, 창밖은 낮은 구름이 가득 드리운 아침이다. 아스팔트로 내딛는 몸이 어제보다 가벼운 건 기분 탓일까? 이틀 동안 배낭을 잘못 메고 무겁다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만 있었는데 내 몸에 딱 맞게 피트 된 배낭 덕에 가벼워진 맘으로 걸어갔다. 오솔길로 빠지며 라에스피나를 벗어났다. 넓게 펼쳐진 목초지에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젖소를 보며, 구름 가득한 하늘이 언제쯤 파란 하늘을 내어주려나? 그래도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넓고 넓은 하늘이, 초록의 푸르름이, 여유 있는 마을풍경이 내 마음을 자유롭게 했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성당에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며 앉아서 기도를 드린다. 언제나 그랬듯 나의 기도는 한결같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그리고 이 여정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기도한다.

늘 바쁘게만 지내다가 나만 생각하며 떠나온 이곳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왜 이곳이었을까? 아픈 남편을 대신한 가장이라는 무게가 내겐 언제나 힘에 부치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이젠 법적나이로 미성년자 딱지를 떼었고,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이 생활을 열심히 이어가려면 내 맘속에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걸음을 시작했다. 그때 TV속 한 장면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인상 깊었다. 힘든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매일매일 걷는 그 모습에 희망이 보여 날 이곳까지 오게 했다. 다른 편한 여행지가 아닌 이곳으로 내가 큰 쉼표 하나 찍겠다고 온 이유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이 너무 편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나 혼자만 힘든 시간을 보내온 것이 아니기에, 말 못 할 고독함과 외로움을 안고 암과의 싸움에서 깜깜한 시간을 보냈을 남편도, 별다른 내색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투정도 어리광도 덜 부리고 지나왔을 아이들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니 난 지금 이 길이 혼자가 아닌 세 사람 몫을 어깨에 실어 좀 더 희망차게 걸어야 한다.

 

언덕을 따라 오르니 구름이 조금씩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나오기 시작하니 동화책에 나올듯한 마을 티네오(Tineo)가 보였다. 12시 30분, 문을 연 바르를 찾아 보카디요와 커피 한잔으로 점심을 채우고 나오니 조금 전보다 더 파란 하늘이 반긴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다시 발걸음을 시작했다. 어제 헤어진 친구들을 다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의 출발이 너무 늦었던 걸까? 그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 흰 커트 머리 할머니가 보인다. 그녀는 66살 영국에서 온 마리아였다. 흰머리 덕분에 할머니라고 느꼈는데 사실 그렇게 할머니는 아니었다. 밝게 웃어 보이는 그녀와 함께 사진 한 장 남기고 서로의 걸음을 축복하며 다시 발걸음 하며 난 뒤에서 제이콥은 앞에서 그녀의 사진 몇 장을 더 담아본다. 그녀의 웃음에 사랑이 넘쳐 나까지 웃음으로 번지게 한다.

 평화로운 날씨 주위의 풍경이 주는 자유로움에 발걸음 신이 나게 걸음을 하는데 그 길 위에서 데이지(Daisy)를 만났다. 데이지는 이탈리아의 국화로 태양이 뜨면 고개를 들고 태양이 지면 고개를 내린다고 해서 ‘태양의 눈’이라 불린다. 꽃말은 희망, 평화, 사랑스러움, 숨겨진 사랑, 겸손한 아름다움이다. 나도 매년 봄마다 물고기자리 입구 화분에 희망 한가득 담아 심어놓는 데이지를 이곳에서 보니 더 애틋하고 반갑다.

 사방으로 산이 에둘러 있고 새파란 하늘에 낮게 드리운 구름마저도 여유 있고, 부는 바람도 차갑지 않고 너르게 펼쳐진 목초지, 아름다운 풍경들 속을 감탄하며 내 맘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언제가 또 힘들 땐 이곳을 기억해 내야지 싶은 맘에 연신 사진을 찍으며 걸음을 했다.

오후 4시가 넘어 보레스(Boress)에 도착했다. 오렌지색 벽면에 한쪽은 자연석으로 따뜻하게 지어진 알베르게 라몬테라(LaMontera)에 도착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르케 부부가 도착해 있었고 줄줄이 콰다, 호세루이스, 조셉까지 모두 다시 재회의 기쁨으로 신이 나 저녁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함께했다.

콩과 야채를 넣은 스튜와 바게트와 토마토, 올리브, 정어리를 넣은 샐러드, 감자를 듬뿍 넣고 구운 토르티야, 그리고 하우스 와인과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달달하게 즐기며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알베르게에 돌아와 서로의 마음을 녹인다.

 1998년도부터 매년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는 호르케 부부, 로사는 이 길 위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서로 느끼고 있으니 이 길이 힘들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이 길 위에서는 모두가 함박웃음 짓고 있다. 힘들지만 힘든 내색 없이 마주하는 얼굴마다 빛이 나는 얼굴,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감싸고 보듬어 주는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티아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길 위에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쌓고 있다.

지금 여기 이 시간 이 공간 속에 함께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두고두고 이 느낌이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자리하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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