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5시부터 6시까지 매일 줌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30여 명이 모여 각자의 성장을 위해 새벽 루틴을 함께하고 응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미라클 모닝은 가족보다 끈끈하고 애착이 넘치는 시간이다. 얼마 전 나는 걱정, 불안, 우울, 리싱크(Rethink) 법이라는 주제로 발표 준비를 하면서 퀘렌시아(Querncia)라는 단어를 만났다.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는 피난처, 안식처를 뜻한다. 투우사와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출전하는 소가 힘을 채우고 숨을 고르는 장소다.
문득 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일까, 나에게 묻게 되었다. 내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고 숨 한번 크게 고르는 장소, 어디였을까.
나의 작은 영화관
헤이리마을에서는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물고기자리 공간이 좋긴 하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일터이자 사는 곳이다 보니 가끔은 창살 없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주저 없이 문을 나선다. 문밖을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도 답답했던 마음은 바로 무장해제다.
마을 안은 원지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개념으로 설계되었고, 그 옛날 있었던 농로가 마을 길의 축이 되었다.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는 헤이리 이전에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고마운 나무다. 꽁꽁 얼어붙었던 갈대광장이 녹고 있었다. 지금은 앙상한 모습이지만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이쁘게 피어날 겹벚꽃 나무와 눈을 맞추니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마을 안에 있는 헤이리 시네마로 발걸음 한다. 1, 2층은 ‘커피 공장 103’ 카페로 커피와 브런치를 즐길 수 있고, 3층에는 상영관이 하나뿐인 단관극장, 30석의 편안한 소파로 구성된 아담한 장소 ‘헤이리 시네마’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주로 독립영화와 일반 개봉작을 섞어 매일 5편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한국 영화를 5,000원에, 외국영화는 6,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음식물 반입도 가능하여서 1층에서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받아 들어가면 커피 향 맡으며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첫 타임 10시 30분, 운이 좋았다. 스크린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 마음 놓고 울고 웃었다. 꺽꺽 거칠게 흐느껴도 깔깔 발을 구르고 웃어도 좋다. 이 작은 동네 영화관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너의 작은 숨구멍
“엽서 한 장 드릴게요.”
아이들, 커플들,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한 장씩 받아 들면 기분 좋아지는 마법의 엽서는 물고기자리에 오는 누구에게나 따뜻한 휴식이 되기를 원했던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커피와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이지만, 우르르 몰려와 후다닥 배만 채우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틈새 공간에 책을 꽂고 엽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고기자리 테이블 위에는 색연필도 놓였다. 색연필들은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조금씩 키가 줄더니 나중에는 아주 조그맣게 되어 손에 쥘 수 없는 정도로 짧아졌다. 손님으로 오신 수녀님 한 분이 “이런 몽당연필은 참 오랜만이에요. 나 하나만 선물로 주면 안 될까요?” 묻기도 했다. 흔쾌히 몇 개를 드렸지만 하나면 충분하다며 손사래 치시던 그 수녀님은 몽당연필로 뭘 하셨을까?
몇 번의 엽서가 디자인되는 동안 나의 아이디어로도 엽서가 제작되었다. 앞면에는 컬러링 북 느낌으로 색칠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뒷면에는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백을 두었다. 색칠하며 머리를 식히고, 우는 아이들에게는 잠시 호기심 거리, 놀거리가 되기를 바랐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다녀갈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숨구멍, 따뜻한 퀘렌시아가 되기를, 그 기도가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여유를 찬찬히 느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