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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Feb 27. 2024

지금 나에게 필요한 논리

나 홀로 제주도_1

  지칠 대로 지쳤다. 작년 크리스마스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컨디션이 아예 바닥에 널브러졌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왼쪽 눈의 백내장이 심해져 수술까지 받았다. 설에도 물고기자리는 휴무 없이 손님들을 맞았던 터라 셰프도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틀 동안 임시휴업을 결정하고 난 미련 없이 제주로 떠났다.

제주 올레와 산티아고 순례길은 100km 이상 걸은 도보 여행자들에게 별도의 ‘공동완주인증서’를 2023년 9월 1일부터 발급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 올레길을 다시 걷고 싶었고, 인증서를 꼭 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던 아들이 여행을 권했다. 아이들은 1월 말 2박 3일로 자기들끼리 제주를 다녀왔는데 그 시간이 꽤 기분 전환되었던 모양이다.

 “엄마도 제주 가고 싶다면서요. 다녀오세요.”

 먼저 말을 꺼내준 아들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를 외치며 편안한 마음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이 생기면 몰아붙이는 성격 때문에 몸을 너무 혹사했다. 이번 여정만큼은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출발했다. 혹시라도 걷고 싶어 질까, 운동화도 제일 불편한 것으로 신었다. 운동복은 당연히 넣지 않았고 원피스 하나만 여벌 옷으로 챙겼다.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단어는 온전한 휴식이었다.

 7시 비행기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날씨도 좋다. 아무도 배려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두근거렸다. 마음을 비우니 내 안에 있었으나 죽어버린 것들이 숨쉬기 시작했다.          



나 하나만 챙기기     


 1시간도 안 걸려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날아왔다. 기대 이상으로 따스한 날씨에 겉옷을 벗어던졌다. 차의 창문을 내리고 제주의 공기를 실컷 들이키며 달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래 내가 집을 나왔구나, 여지없이 집 밖을 나오면 허기부터 진다. 나는 주위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해물짬뽕을 시켜 호로록거리며 한 그릇 시원하게 해치웠다. 디저트도 하나 먹어줘야지 싶어 지나는데 구좌읍이 보인다. 당근으로 유명한 동네다.  땅속의 보약, 색이 고운 당근은 단단한 식감도 좋지만 제철에 먹으면 과일보다 더 달아서 즐겨 먹는다.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이라는 영양소가 풍부한데 식도에서 비타민 A로 변환된다. 비타민 A는 시력을 유지하고 햇빛에 의한 손상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며,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효과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여 세포 손상을 예방하고 만성질환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바닷가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제주 당근으로 만든 케이크와 주스 세트가 있어 망설이지 않았다. 한 모금 들이켜니 피곤했던 눈도 번쩍 뜨이고 몸속 세포들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에메랄드 바다 위에 가볍게 넘실대는 파도가 정원처럼 너르게 펼쳐져 있는 풍경에 복잡했던 머릿속도 지쳤던 마음도 누그러들었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숙소 왼쪽으로는 우도가, 오른쪽으로는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비수기라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주차하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 사서 길 건너 바닷가로 향했다. 햇볕도 좋고 공기도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했다. 한 시간 넘게 남은 입실 시간 동안 넘실대는 바다와 데이트를 즐겼다. 해방이다. 아침, 점심 식사 차리지 않아도 되고 저녁은 뭘 해줘야 할지 고민 없는 이 시간이 너무 달콤했다. 짠 내음 안주 삼아 다시 맥주 한 모금 들이켰다. 날아가는 새들의 자유가 부럽지 않았다. 올해 처음으로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다.

“힘들었지? 항상 웃으며 살아내느라 애썼어. 갇혀있던 무겁고 어두웠던 마음들, 이곳에서 훌훌 털어내고 편안하게 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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