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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Sep 22. 2024

제주 한 모금

(늦여름의 맛, 청귤의 향기)

과일의 향기는 내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다. 제주 된 더위에 수확한 청귤의 향기는 자연이 숨겨놓은 상큼한 비밀을 속삭이는 듯,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레몬과 라임의 톡 쏘는 산미가 어우러져, 아침이슬 고스란히 머금은 신선함이 나의 눈앞에 두 박스 배달되었다.

 신선한 시트러스(Citrus)의 상큼함에 가벼운 꽃향기와 허브의 미세한 흔적까지 스며든 초록의 청귤, 과일이 익기 전 청록색을 띠는 상태에서 수확된 귤은 맛이 달콤하게 변하기 전 단계다. ‘청’이라는 접두사는 과일의 색상을 나타내며 ‘귤’은 귤의 종류를 나타낸다. 귤(Citrus)이란 단어는 여러 종류의 과일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귤은 작고, 껍질이 얇고, 쉽게 벗길 수 있는 과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품종이 있다. 제주에서 가장 흔한 온주밀감(Satsuma)은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며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과일이 익기 전 푸른 상태로 상큼한 신맛이 특징인 청귤(Young Citrus), 작고 달콤한 만다린(Mandarin), 귤보다 더 붉은색을 띠고 풍미가 깊은 탠저린(Tangerine),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은 달콤한 품종 클레멘타인(Clementine)은 겨울에 만날 수 있다.

 청귤은 다른 과일에 비해 출하 시기가 짧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첫 수확의 신선함을 기대하며 7월 초 작년에 구매했던 농장을 찾아 인터넷으로 선 주문했다. 내 손에 올 날을 기다리며 항아리를 씻었다.

 오래 비워둔 항아리에 굵은소금 1컵과 따뜻한 물 1리터를 풀어 스펀지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고, 두 차례 헹구어 물을 가득 받아두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냄새를 날려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 물을 비우고 항아리를 바짝 말렸다. 항아리의 미세한 공기구멍이 햇살을 받아 소독되는 과정이다.

 개수대에 물을 반쯤 받고, 베이킹 소다를 1컵 풀어준 후, 청귤을 조심스레 담갔다. 작은 거품들이 수면 위에 맺혔다. 껍질에 남아있는 먼지와 불순물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부드러운 솔로 살살 문지르며 씻었다. 너무 세게 닦으면 상처가 날 수 있다. 힘을 빼고 아이 돌보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맑은 물에 여러 차례 헹궈내니 점점 더 싱그러운 초록빛을 띠었다. 바구니에 담긴 청귤을 하나하나 면포로 닦아낼 때마다, 입 안에 고인 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 물기까지 완전히 제거하면 청귤청 담을 준비가 마무리된다.

 청귤의 반은 꼭지만 도려내고 껍질째 착즙기에 갈았다. 착즙 후에는 동량의 비정제 설탕을 넣어 녹였다. 나머지 반은 뜨거운 물로 소독한 도마 위에 놓고, 셰프가 갈아 둔 칼로 수월하게 슬라이스 했다. 저울에 맞춘 동량의 비정제 설탕을 준비해 소독을 끝낸 항아리 뚜껑을 열고 슬라이스 해둔 청귤과 설탕을 5번에 나누어 층층이 넣었다. 그 위로 착즙 해 섞어둔 청귤 액을 붓고 청귤 무게의 10% 레몬즙을 더해 마무리했다. 레몬의 높은 산도가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하고 청귤보다 강한 산미가 있어 상큼한 맛도 살려줄 것이다.

 이제 항아리 속에서 만난 청귤과 설탕이 마법을 부릴 시간이다. 발효가 시작되면 청귤의 상큼한 신맛이 설탕의 달콤함과 어우러져 부드러운 맛을 입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깊이는 더해진다. 발효되는 동안은 매일 항아리 상태를 확인하면서 나무 주걱으로 바닥에 가라앉은 설탕을 조심스럽게 저어야 한다.

 2주가 지나 숙성된 청귤을 지켜보다가 기다림에 지친 조급증을 이기지 못해 결국 한 잔 담았다. 유리잔에 연둣빛 청귤청 원액을 5스푼 넣고, 얼음을 가득 담은 후 탄산수를 한 병 따서 부었다. 스푼으로 가볍게 저어 한 모금을 삼켰다. 목을 타고 흐르는 청귤 에이드에는 제주의 바다 향기까지 담겼다.

 9월이 시작되자, 설탕이 완전히 녹아들었다. 항아리 곁에만 가도 새콤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청귤청을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두 병 준비했다. 물고기자리 오픈 준비를 마치자, 늘 손을 꼭 잡고 다정히 오시는 노부부께서 첫 손님으로 들어오셨다.

 “더운 여름 잘 지내셨어요? 코로나가 다시 기승이라는데 무탈하셨죠?”

 “더워서 어디 나가기 힘들었지, 그래도 무사히 잘 지냈어요. 오늘은 뭐가 맛있을까? 알아서 만들어줘요.”

 이따금 물고기자리를 찾는 이들 노부부는 커피보다 직접 담근 수제 음료 맛을 더 아끼는 분들이다. 나는 정성스럽게 만든 청귤청을 따뜻하게 내어드렸다.

“사장님이 추천해 주는 차는 언제 마셔도 참 깊고 맛있어요.”

 한마디 칭찬에 내 마음 위로 훈훈한 바람이 분다. 두 분의 따뜻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나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청귤청 항아리가 천천히 익어가고 있다. 물고기자리를 찾는 손님들께 늦더위 속 갈증을 해소하고, 마음까지 채우는 사랑의 한 모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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