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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Feb 23. 2024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에게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이상, '이런 시' 中


 
 
언젠가의 수업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나는 편지를 썼다.
마지막 순간의 나를 떠올리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죽음에는 꼭 자연사만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편지를 쓸 정도의 온전한 정신이 있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하고픈 말을 글로 한다는 것은 어쩐지 비겁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은 눈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으며 직접 말해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고픈 말 대신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이런 시의 한 구절을 끄적였다.
 
이름처럼이나 이상한 이상의 몇 마디는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남겨진 이에게는 잔인한 말일 수는 있겠으나, 나도 이런 은은한 잔향 같은 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가 나를 어여뻤다며 꾸준히 상기시켰으면 좋겠다.
아마 문학과는 퍽 멀었던 너는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시였겠지만, 이렇게라도 어린 날의 나와 비슷한 심상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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