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삼킨 하루

말하지 못한 나에게 보내는 위로

by 민토


직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업무만 오가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며, 때로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평가와 관계를 바꾸어놓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회의 자리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 혹은 불합리한 지시가 내려올 때마다 속에서는 말이 차올라온다. 그러나 그 말은 늘 목구멍 언저리에서 멈춰 서고 만다. 상사와의 관계에서 굳이 불필요한 파장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계산, 혹은 내 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지 못한 채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때 그냥 말할 걸"이라는 후회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더 큰 문제는 상사나 동료들 중에는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고집하거나, 타인의 의견을 단순한 반대 의견으로 치부해버리는 태도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곧 다툼의 씨앗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늘 선택한다. 차라리 말을 삼키는 것이 낫다고. 그러나 문제는 그 결과가 결코 ‘괜찮음’으로 남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말하지 않은 순간은 나를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가장 깊게 상처 입는 이는 나 자신이다.

쌓여가는 말들은 속을 갉아먹는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자리는 자책으로 채워지고, "나는 왜 늘 참기만 할까"라는 질문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물론 직장 생활에서 모든 말을 다 꺼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 지혜이고, 감정의 절제가 관계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윤리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너무 잦아질 때, 나는 어느새 존재감을 잃어가는 것 같고,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듯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모든 말을 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최소한의 내 목소리를 내는 연습은 필요하다. 작은 의견이라도 용기를 내어 말하는 순간, 상대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는 묘한 해방감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꼭 필요한 순간, 더 큰 용기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몇 마디의 말을 삼켰다. 어쩌면 내일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치지 않으면서도 내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리라 믿는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후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것마저도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려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이 너무 쓰고 독해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겠지만, 좋은 약이 입안에서 쓴맛을 내듯이 언젠가는 나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어 더 큰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지 않을까. 나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