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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02. 2024

대전 사람들은 매운 김치를 먹는다


대전에 유명한 식당이 있다. 그곳은 선화동에 있는 소머리 국밥집으로 김치가 맵기로 소문이 났다. 내가 직접 가서 먹어본 것은 아니고 백종원 씨가 출연하는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매워도 보통 매운맛이 아닌가 본데 매운맛이라면 껌뻑 죽는 우리 민족에게 인기가 많아 김치만 따로 택배로 팔 정도라고 한다. 


엊그제 앞집에 사는 언니가 김치를 한 통 먹으라고 주었다. 지금 언니네 집에는 친정어머니가 방문 중이신데 겉절이를 담그셨다고 나에게도 나눠 주신 것이다. 


감사히 받아서 오늘 닭죽을 끓여 겉절이를 꺼내 한입 먹었는데, 이렇게 '화끈한' 김치는 또 처음 먹어보았다. 매운맛 김치라고 하면 내가 아는 건 명동 칼국수의 마늘 아린 맛이 강한 김치인데 어머니의 김치는 그것과 다른 차원의 매운맛이었다. 


순수하게 스코빌 지수가 높은 고춧가루로 승부를 보는 강력한 매운맛이었다. 그리고 언니의 어머니는 대전 사람이다. 


순간, '대전 사람들은 김치를 맵게 먹나 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말레이시아라는 나라가 아이와 둘이 살기에 적합한 지 한 달 답사를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원래는 그 숙소 용도가 주재원들 용이었다. 방이 여러 개 있는 큰 콘도로 하숙집처럼 식사와 청소가 제공되는 형태였다.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시는 분은 연변에서 오신 분이었다. 음식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고 딸이 한국에 사는데 손녀가 딱 내 아들나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냥 따뜻했고 볼 때마다 손녀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분도 한국에서 잠시 일을 하신 적이 있는데 어느 큰 집의 거주 도우미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께서 뜻밖의 말씀을 꺼내셨다. 


-왜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냉동실에 넣고 먹어요?


김치가 어는 건 일종의 사고와도 같은 일이다. 일부러 김치를 냉동실에 넣고 얼려서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글쎄, 물김치를 여름에 시원하게 먹으려고 살짝 얼리는 정도일까? 


당연히 나는 김치 냉장고도 따로 있고 아니면 냉장실에 넣지 김치를 얼려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정색을 하며 자신이 본 것이 맞다고!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얼려 먹는다고! 단정을 짓고 주장하셨다. 


내가 더 말을 이어가면 목소리가 커질 거 같아서 바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싸늘해진 나의 태도를 보고 아주머니도 질세라 입을 앙다물고 일을 하러 가버리셨다. 


속담 중에 '서울에 가 본 놈과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서울에 한 번도 안 가본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억지 주장과 논리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은 수용하지 않고 자기의 말만 맞다고 우긴다는 뜻이다. 


서양권에서는 이를 책에 비유한다.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고 했다. 제한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인 확신을 갖는다는 말이다.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접근과 사유가 가능하지만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사람, 단 하나의 경험만 해 본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대전에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대전 사람들의 김치를 먹어볼 일이 없었다. 단지 영상을 통해 '대전의 어느 식당 김치는 맵다'라는 정보를 얻었고 마침 대전에서 오신 어머니의 김치가 '화끈하게' 매웠다. 


덕분에 '대전 사람은 김치를 맵게 먹는다'는 귀납적 오류를 내려버렸다. 물론 이 생각에 못을 박지는 않는다. 마침 우연히 그랬을 뿐이라는 걸 잘 안다. 


덕분에 예전에 만난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또 어떤 부분에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만나보지 못한 어떤 사람들은 '언 김치'를 선호하고 있지는 않을까?


대체 김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 '화끈한' 김치를 먹으며 나의 태도를 점검해 본다. 




표지그림 : Jan Steen, <Argument over a Card Game>,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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