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사고, 한쪽에서는 버리고
말레이시아에 살 때 그리스인 친구가 있었다. 이름이 기니까 줄여서 '아타'라고 부르겠다.
처음에는 그리스어 억양이 심한 그녀의 영어를 알아듣느라고 진땀을 뺐다. 영어인 듯 영어 같은, 그러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그래도 나는 아타가 다니는 도자기 공방에도 몇 번 따라가며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내 남편은 아타를 처음 만난 날 '이자벨 아자니'를 닮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아타는 미인이었다. 게다가 키는 165센티에 몸무게는 49킬로로 한국여성들의 워너비 마름이었다.
내가 그 정도 몸매였다면 아마 옷장에 옷이 넘치도록 옷을 사며 멋을 부리고 다녔을 거 같다. 하지만 아타의 패션은 늘 소박했다. 청바지에 흰 티는 몸매가 받쳐줘야 하듯이 소박한 패션도 아타가 입으면 어딘가 멋스러웠다. 등을 덮는 까맣고 긴 천연 곱슬머리까지 더해져 아타는 정말이지 그리스 여신 같았다.
그녀는 늘 로마병정이 신는 거 같은 스트랩이 많은 샌들을 신었고 유럽의 거리에서 흔히 볼법한 가죽으로 만든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크로스가방을 메고 다녔다.
가끔 아타의 가족과 외식을 했는데 그때도 그녀의 가방은 늘 같았다. 하루는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백팩을 메고 왔는데 마치 중학생 때부터 썼음직한 낡은 백팩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 가방을 보고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저 정도로 낡았으면 버리고 새로 사도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저렇게 예쁜 원피스를 입었으면 그에 맞는 예쁜 가방을 들 거 같아.
생각보다 패션에 무감각한 건가?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요즘 나는 비우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전에도 2년에 한 번은 살림을 몽땅 뒤집어엎어서 한바탕 버리고 나누고 팔기를 했다. 아무리 2년에 한 번씩 정리를 했다고는 해도 약 6년간 살았던 살림의 양은 만만치 않았다.
집은 아들과 나, 두 사람이 살기에 큰 편이었고 수납장이 많았다. 넓게 퍼져있던 살림들이라 그렇게까지 많다고 생각을 못했는데 말레이시아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모두 거실로 꺼내 놓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양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 보내온 단출한 가구들 외에 잔잔하고 잔잔한 가재도구들, 가방과 옷들.
물건을 팔다 팔다 나중에는 집에 놀러 오는 사람한테 갖고 가고 싶은 거 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떠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국하는 날 친구 샬럿이 나에게 산 퀸 사이즈 침대가 나가고 나서야 집은 온전히 텅텅 비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물건을 내보내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캐나다에 가면 아무것도 사지 않으리라.
그러나 4년 반이 지난 지금.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있었나 싶게 집에는 물건들이 갈팡질팡 어지럽혀져 있다.
다이어트와 물건 들이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나는 게 아니고 야금야금 증가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계치에 육박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지 않았다면 여름방학동안 했을 일들을 요즘 해나가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이다.
무조건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게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그 물건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는 것이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물건이 많고 적음의 기준은 참 모호하다. 나는 쇼핑을 자랑하는 떼샷이 많이 올라오는 여행 커뮤니티도 자주 구경하고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물건을 버렸다고 인증을 하는 커뮤니티도 자주 구경을 한다.
여행 커뮤니티의 떼샷에 비교하면 나는 물건이 없는 사람이고,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커뮤니티의 사람들에 비하면 물건이 많은 편이다.
나는 아직 적당한 나의 기준을 찾지는 못한 거 같다. 하지만 옷장 안에 쌓여있는 여러 개의 가방을 보면서 문득 단출한 살림의 그리스 여신 아타가 떠올랐다.
낡고 헌 가방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그런 아타의 라이프 스타일.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 될지라도 그녀의 몸도 짐도 가벼운 삶을 동경한다.
표지그림 : 동네 도서관 창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