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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13. 2024

캐나다의 운전 문화

양보 + 양보 = 양보


나라는 사람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동받는 타입이다. 캐나다에 와서 가장 감명받은 것은 바로 운전 문화였다.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았지만 운전 난도가 높아 보이는 곳은 중국의 상하이와 베트남의 하노이였다. 말레이시아나 한국도 운전 난이도가 결코 낮은 나라는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깜빡이를 켜면 잘 끼워주는 편이다. 하지만 차와 차 사이로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옆 차선의 차가 양보를 해 주어도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것도 적응이 되면 오토바이가 달려오는 속도와 거리를 백미러로 재고, 지나가는 찰나를 노리는 순간 차선 이동을 하는 스킬이 향상한다. 


캐나다에 도착한 첫날, 비 오는 밤 고속도로를 내가 운전해서 달려야 했다. 아, 그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했다. 큰 사거리에서의 비보호 좌회전도 온몸의 세포를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4 way stop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도 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입장에서도, 길을 걷는 보행자의 입장에서도 여전히 감동적이고 한국 운전자들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다. 





1.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어느 동네에나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있게 마련이다. 동네 어귀에 주택 단지로 진입하는 구간이나 학교 주변의 작은 길, 상가 단지의 주차장 등이다. 


처음에 캐나다에 왔을 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면 당연히 사람인 내가 '우선멈춤'을 했다. 이건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누구나 그렇다. 사람 나고 차 났지만 한국에서는 차가 우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건너가야 한다. 


은근히 차의 통행량이 있는 우리 집 앞의 저 작은 무신호 횡단보도는 내가 멈추면 차도 멈춘다. 100%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차들이 사람이 나타나 건너갈 조짐이 보이면 무조건 멈춘다. 


초반에는 이렇게 멈춰주는 게 어찌나 황송했는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마음이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멈춰주는 차들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반면 캐네디언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당당하게 건너간다. 온몸으로 "차, 네가 서!"라는 아우라를 뿜으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황송해하던 나도 이제는 그냥 지나가는 차를 보면 '어쭈? 안 서?'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사거리 신호 고장 시 (내가 이것을 글로 설명할 있기를 바란다)

쿠알라 룸푸르에 잘란 툰 라작이라는 길의 거대한 사거리가 있다. 이 사거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지독한 꼬리물림으로 대 혼돈 상태에 접어든다. 꼬리 물림 때문에 신호가 바뀌어도 건너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있으나 마나 할 것 같은 신호등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또 달랐다. 


한 번 사거리의 신호등이 고장이 났는데 혼돈은 한층 깊은 국면을 맞이했고 차선은 무의미했으며 요령껏, 운전자의 재량껏 이 거리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 운전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내가 이렇게나 운전을 잘하는구나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의 사거리에서 신호가 고장이 나면 일단 모든 차가 멈춘다. 진행순서는 다음과 같다. 남북으로 마주 보는 차선에 있는 차들이 건너간다. 다음으로 동서로 마주 보는 차들이 건너간다. 비보호 좌회전도 이 순서에 맞춰서 진행된다. 


처음에 운전대를 잡고 저 멀리 점멸하는 빨간불을 보았을 때 내 변연계에도 빨간불이 점멸했다. 큰일 났다. 저걸 어떻게 건너간담?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교통경찰도 필요 없었다. 차곡차곡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남북 - 동서의 차들이 사거리를 건너간다. 두 나라 모두 사거리의 신호가 고장 났을 때 교통경찰이 필요가 없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3. 깜빡이를 켜면 끼워준다.

이건 동네 by 동네다. 언급할 수 없지만 특정 민족이 모여 사는 동네는 차선 변경이 용이하지 않다. 깜빡이를 켜도 잘 안 껴준다. 한국에서 운전할 때에도 미리 깜빡이를 켜면 대체 왜 바짝 붙어서 못 들어오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캐나다에서 운전할 때 정말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 



깜빡이를 켰더니 끼워주더라. 



심지어는 터무니없이 2차선을 넘어 좌회전 차선으로 가려고 해도 신호만 잘 보내면 차들이 알아서 멈춰주고 끼워서 보내준다. 


이런 경험을 내가 하거나, 다른 차가 양보해 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육성으로 "이걸 끼워주네?" 하며 아직도 감탄하고 경탄한다. 



양보는 양보를 낳는다. 그만큼 나도 잘 끼워준다. 어떨 때는 비보호 좌회전하는 차를 위해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도 해준다. 내가 선선히 양보했을 때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캐나다'는 확실히 이런 면에서 마음에 여유가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깜빡이를 켜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 차에 바짝 붙어버리는데 이 문화만큼은 개선이 되면 좋겠다. 더불어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우선멈춤 하는 것이 보행자가 아닌 자동차가 되길 바란다.  





표지그림 : 양보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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