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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랑 May 02. 2023

코걸이 여자를 사랑하는 이씨

이별준비(02. 신혼여행)

“들어봐! 자기 소리가 더 크지?”

“그래도 신혼여행 때의 당신 소리만 하겠어?”     

밤이 되면 서로가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하느라 여념이 없다. 잠자리에 늦게 드는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날 아침 상대방의 귀에 휴대폰을 대 주며 짓궂게 놀렸다. 어떤 부부들은 방귀도 못 텄다는데 우리는 허물없어도 너무 없다. 술 마신 날 밤의 이 씨의 코골이 소리를 천둥소리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신혼여행 당시, 나의 코골이 소리를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얄궂게 되받아넘겼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내 나이 34살, 스물스물 노처녀로 자리매김할 때였다. 요즘은 이 나이가 팔팔한 한창때지만, 그 시기는 ‘똥차’ 치우듯 아무에게나 가던지 혼자 살아야 했다. 홀로 늙어 갈 것을 생각하니 문득 서러워졌다. 결혼이나 해볼까? 반반하게 낳아 주신 부모님 덕분에 평소에는 사내들이 제법 얼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려고 둘러보니 그 많던 남자들은 온데간데없고, 오랫동안 나를 짝사랑했던 이 씨마저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그를 만났지만, 촌스러운 그가 내 눈에 차지 않아 그의 마음을 애써 모른척했었다. 서둘러 그를 만나 결혼 생각을 물었다.

“한 달 안에 결혼 날짜와 예식장을 잡을 수 있어요?”

이 씨는 믿기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뜨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대답했다.

“그럼요.” 

“저를 잘 알겠지만, 한 달이 지나면 제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는 일주일 뒤에 결혼 날짜와 예식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해왔다. 가족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엄마는 노처녀를 시집보내게 돼서 안도의 한숨을 쉬셨고, 형제자매는 자기 자신만 아는 나의 성격이 애꿎은 사람을 잡을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정작 당사자 이 씨는 행복해 보였다. 나도 결혼휴가 일주일을 생각하니 절로 즐거웠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지?’ 결혼 준비는 모두 이 씨에게 맡기고 신혼여행으로 갈 만한 곳을 물색했다. 결혼식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전 어디든 좋아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요.”

“제주도도 안 가보셨어요?”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그는 연애 경험 없는 나이 든 총각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배낭여행을 가자고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오지’만 다녔던 나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용기가 있었다. 미얀마의 탑군 ‘바간’은 오래전부터 가고 싶은 곳이었다. 막상 가서 보니, ‘바간’은 관광객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천연 보석 같은 곳이었다. 대부분 미얀마인은 자전거를 이용했고 어쩌다 오토바이 탄 사람이 한두 명 있었다. 여행자는 사이클 릭샤나 마차를 빌려야 했다. 택시도 버스도 아무것도 없었다. 간혹 한 무리의 유럽인을 태운 관광버스만이 먼지와 뒤섞인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이 씨에게 미얀마를 어떻게 가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늘 상 혼자 여행하던 대로 이 씨와 상의 없이 멋대로 계획하고 움직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우리 신혼여행이 어땠는지 이 씨에게 물었다.

“신혼 첫날밤은 생각나?”

이 씨는 오히려 되물었다. 신혼여행 첫날은 방콕 경유로 늦은 저녁에야 양곤에 도착했고,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바간행에 몸을 실었다. 결국 나는 그동안의 피로가 몰려와 씻지도 않고 곯아떨어졌다. 셋째 날부터는 편도가 퉁퉁 부어올라 물 한 모금 삼키기도 힘들었다. 신혼 첫날밤은 없었다.

“첫날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잠을 설쳤어. 둘째 날은 먼저 곯아떨어져 코를 고는 네 소리에 잠을 못 잤지. 셋째 날은 코를 고는 것도 모자라 무호흡까지 하는 거야. 이러다 숨넘어가면 어쩌나 걱정돼 잘 수가 있어야지.”

 

신혼여행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오지 여행에서 막 빠져나온 그런 모습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바랜 옷을 입고 현지 아이들과 헤벌쭉 웃는 모습은 신혼여행에서 볼 수 있는 예쁘게 치장한 신부라고 할 수 없었다. 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명품만 찾을 것 같던 여자가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주저앉아 쉬고, 현지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에 당황스러웠지.” 

이 씨는 그때가 생각나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오히려 그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이처럼 순진한 당신에게 또 한 번 반해 버렸지.”

     

알콩달콩한 연애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부부가 된다던데 우리는 그런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저 철없이 나이만 먹은 여자의 치기 어린 생각으로 어쩌다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오히려 그는 나의 순수한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 했다.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줄 때 가장 아름다운 부부라고 했던가? 결혼해서도 내 여행사랑은 계속되었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배낭을 메고 나서는 나에게 안전을 여러 번 당부했다. 위험한 여행지는 혹시나 사고 날까 노심초사했지만, 여행을 못 가게 하거나 아내 역할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어쩌다가 부부가 된 이후로 20여 년이 흘렀다. 이 씨의 콩깍지는 아직도 그대로 있어 중년의 코골이 여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비록 그런 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지만 늘 그의 사랑에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꼭 그와 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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