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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랑 Mar 13. 2023

인연을 만드는 다리 '광교'

이별준비(01. 남편 이씨와의 첫만남)

"종각 어디에서 만나재요?"

"청계천 광교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괜찮아요?"

서른이 넘으니 여기저기서 소개해 준다며 만남을 주선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경기도 북쪽 휴전선 근방이다. 주말마다 본가에 가려면 굽이굽이 내려와 의정부역에서 1호선을 타야 하는 먼 변방이었다. 그 중간쯤이 종각역이다. 소개팅 장소로 종각을 이야기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종로타워 33층 식당인 줄 알던 때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광교'라니 촌스러움이 묻어났다.


종각역에 내려 광교로 갔다. 그 순간, 많은 사람 중에서 검은 등산 재킷과 바지를 입은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머리는 희끗희끗 새치도 있었다. 검은 등산복 탓인지 시골에서 막 올라온 사람 같았다. 더구나 등산복은 정교함이 떨어져 보였다. 만약 저 사람이 말을 건네면 아닌 척하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도 잠시 그 남자가 다가왔다. "유선생님 맞지요? 사진으로 먼저 뵈었습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이 씨였다.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을 서울로 온, 그곳에서는 나름 수재였다.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면서 청계천을 걷자고 했다. 때마침 청계천이 며칠 전에 복원사업을 마치고 새롭게 개방된 때였다. 나도 변화된 이 곳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지라 흔쾌히 승낙했다. 복개 구조물과 그 위에 세워진 청계 고가도로만 보다가 탁 트인 개천을 보니 이곳이 내가 알던 서울이 맞나 싶었다. 이씨는 대학생이 되고부터 고시반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연애 한 번 못해보고 10년의 세월을 보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오늘이 첫 데이트라고 즐거워했다. 그의 행색은 충분히 그 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내 눈은 저 멀리 개천에서 발 담그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왜 광교로 장소를 정했는지 아세요? 이곳은 인연의 다리랍니다."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조선시대 성종이 잠행 중에 광교에서 우연히 김동희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어질고 착하신 임금님을 만나기 위해 경상도에서 해삼과 전복을 가지고 올라온터였는데, 잠잘 곳이 없어 광교에 웅크리고 졸고 있었다. 성종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김희동에게 '충의'라는 벼슬을 내리고 상금을 내렸다. 그가 소개팅 장소를 정할 때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느덧 청계천 시작 지점인 모전교에 다다랐다. "모전은 각종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말해요." 청계광장과 맞붙어 있는 이곳은 시원하게 폭포가 내리고 있었다. 폭포 위로 그 광장의 상징 조형물인 '스프링'이 보였다. 이곳까지 청계천을 한 바퀴 돌아오면서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광통교 등에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어느새 해박한 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커피 한 잔, 하고 싶어요." 이 말에 그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미안해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커피자판기 앞에 섰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근처에 근사한 카페도 많았는데 역시 이 사람은 연애 한 번 못 해본 고시반 사람이었다. 그 뒤로도 한참을 걸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집에 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씨와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앞으로 더 볼일 없을 것처럼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뒤로, 가끔 내 홈페이지를 다녀간 흔적을 빼고는 그 사람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홀로 여행을 즐겼으며, 그 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잊혀 갔다. 그 후 일 년 뒤, 여름방학 동안 서아시아를 돌고 인천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반갑다는 듯이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광교에서 만난 이 씨였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무거운 배낭을 대신 짊어지더니 내가 타려던 버스에 냉큼 올라탔다.


지금은 이 씨와 나는 한집에서 18년째 살고 있다. 결혼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홈페이지를 종종 방문해서 내 생활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날도 내 입국 시간을 놓칠까 봐 아침부터 인천공항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가끔 싸울 때는 '광교'에서 만나지 말 걸 후회하기도 한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으로 살려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씨는 광교에서의 짧은 만남을 인연으로 살려낸 현명한 사람이었다.

현명한 이씨,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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