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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랑 Jun 04. 2023

내 옆에 네가 있어 행복해.

이별준비(03. 답이 없는 펫로스)

“훈아! 개새끼가 쫓아간다. 조심해!”

“오빠! 뭐? 개새끼?”  

   

2018년 여름, 엄마가 돌아가셨다. 3개월 동안 응급실을 오가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생각뿐이었다. 강화도 한달살이를 하면서 그 빈자리가 사무치게 그리워 여름에도 한기가 들었다. 그때 애견, 꾸씨가 자신의 온기로 나를 감싸줬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에서야 올 수 있었기에 평일은 온통 꾸씨와 시간을 보냈다. 가끔 오빠네와 친구들이 놀러 와 나를 위로했다. 

    

그날은 큰오빠네가 강화도 집을 방문했다. 꾸씨는 손님이 오자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게다가 고등학생 조카 훈이를 친구라고 여겼는지 졸졸 따라다녔다. 훈이는 뉴질랜드식의 목조주택이 신기한지 바로 2층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물론 그도 뒤질세라 뒤따랐다. 그때였다. 큰오빠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털복숭이 꾸씨가 해코지라도 할 것처럼 ‘개새끼’를 조심하라고 외쳤다. 내 귀를 의심했다.

“오빠! 지금 꾸씨에게 개새끼라고 한 거야?”

“미안해! 강아지 새끼인데.”

“뭐? 강아지 새끼?”

오빠는 급한 마음에 변명했지만,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은 다시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오빠 아들한테 사람 새끼라고 하면 좋아? 내 강아지도 어엿한 이름이 있다고.”

강아지도 아니고 ‘개새끼’라 말하는 오빠에게 섭섭하고 속상해 화를 냈다. 그 일이 있는 후, 오빠는 내 눈치를 살피며 꾸씨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 가족 누구도 강아지를 키운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동네 어귀에서 강아지를 찾는 현수막을 보았다. ‘우리 강아지를 찾아주시면 1,000만 원 사례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족들은 어이없는 사례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년 뒤, 나는 꾸씨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를 찾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고, 혹여 나도 그를 놓칠까 꼭 껴안았다.

     

2019년 가을, 꾸씨와 제주살이를 할 때였다. 그와 하루를 꽉 차게 놀다 보면 점심은 쫄쫄 굶기 일쑤였다. 그날은 더 이상 고픈 배를 참을 수 없어 집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 차를 세웠다. 거의 문 닫을 시간이었고 사람이 없었다. 식당에 강아지를 들여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아주머니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럼 되고말고. 고놈 참 예쁘게 생겼네. 우리 아이랑 닮았어.”

아주머니는 상 차리는 내내 꾸씨에게 아련한 눈길을 보냈다.

“나도 항상 강아지와 여행을 다녔어. 그 애가 가고 난 후, 심하게 우울증을 겪었지. 아이와 한 번도 온 적 없는, 추억이 없는 곳을 찾다가 제주까지 오게 됐지. 벌써 10년이 흘렀네.” 

상차림이 끝나자 지갑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손때묻은 강아지 사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은 더러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좋다’고 비아냥대고, 강아지를 ‘아들’, ‘딸’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니꼽게 여긴다. 하지만 반려인의 삶을 살게 되면 그들 중 대부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각이 바뀐다. 집에 있는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친구들의 만남도 차일피일 미룬다. 강아지에게 쓰는 시간과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 혹여 소리와 몸짓으로 소통하는 날에는 깊은 교감을 나눈 듯 들뜨기도 한다. 사랑에 푹 빠져 함께 지냈던 강아지가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병이 난다. 이른바 펫로스 증후군이다. 제주 식당 아주머니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순간 나의 가슴도 철렁했다. 그때 7살이었던 꾸씨는 세월이 흘러 12살 노견이 되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언젠가 닥칠 이별의 순간을 걱정한다.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의 저자 세르주 치코티는 반려동물이 죽을 때 남자는 가까운 친구를, 여자는 자녀를 잃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이 떠난 후, 상실감과 우울감을 겪었던 사람들은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라고 한다. 그때 ‘개새끼’라고 불렀던 큰오빠는 나의 안부를 묻기 전에 꾸씨의 건강 상태를 묻는다. 아마도 그가 없는 동생의 삶을 염려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꾸씨의 죽음을 준비하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도 꾸씨는 내 몸에 엉덩이를 붙이고 엎드려서는 지긋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느새 졸졸 따라온다. 껌딱지가 따로 없다. 이 세상에 그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있을까. 서로 다른 생명의 주기 때문에 언젠가 기어코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면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삶에 남기고 간 기억을 꺼내 볼 용기나 있을까. 오늘도 ‘노견, 꾸씨’를 생각하면 언제나처럼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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