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by 채승우

“걔가 죽은 날에는 하얀 눈이 내렸어. 내 말 듣고 있어? 새파랗게 하얀 눈이 내렸다고.”

그녀의 쭉 찢어진 입술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핏기 없는 옆모습도. 나는 조용히 술잔에 손을 뻗었다.

“시우야 어떻게 생각해? 왜 하필 눈이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눈을, 눈을 볼때마다 이제 난 자살이 생각날꺼야.“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살짝 올라간 저 입꼬리. 저 입꼬리의 주인이 한명 더 있었는데.

”내 사랑이 문제였나봐. 내 사랑은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나봐. 내가 사랑했던 진수는 불행했나봐. 내가 가장 사랑했던 눈도 내 사랑이 싫었나봐. 왜 하필 그날 눈이 내린걸까. 내 사랑이 얼마나 마음에 안들었으면…“

기억이 났다. 그녀는 내 전 여자친구 시연이와 닮아있었다. 연한 갈색의 눈동자. 하얀 피부. 얼굴을 뒤덮는 저 입술.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슬슬 갈까요 누나? 더 늦어지면 추워요.”

“그래 가자. 추워서 아직 눈도 안 녹았어.“

그녀 말대로 눈은 길거리에 쌓여있었다. 밖에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연이보다 살짝 키가 컸다. 그래도 얼굴은 시연이가 더 예뻤다.

“이쪽이야.”

그녀를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어느새 그녀의 집 앞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스쳐지나가는 차가운 옆모습. 나는 시연이의 옆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창백한 옆모습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 같아서 좋았다. 겨울 바람 때문인지 그녀의 옆모습은 꽤 슬퍼보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