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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Mar 09. 2023

내 선택이 옳았구나!


우리 아들이 또 휴가를 나왔다. 두 번째 휴가에 또라는 단어는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이 군대를 간 건지 외출을 한 건지 여행을 간 건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연락은 잘 되고, 휴가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나올 예정이고, 사이사이 외출을 하면 더 자주 볼 수 있다. 집에서 부대까지 1시간도 안 걸리고 지하철로 오니까 외출을 집으로 할 때가 있다.


물론 참 좋다. 자주 보니 좋고, 힘들지 않은 곳으로 배치받아서 더 좋다. 공군 운전병으로 지원해서 운전대 잡는 것만으로도 좋을 줄 알았는데 아들은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그곳에 배치받기 위해 훈련병 때 노력을 했다는 거다. 우리는 그저 그냥 쉽게 얻었다고 생각하고 놀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좀 섭섭해한다.


" 내가 여기 오려고 어떤 일을 했는데 다들 이러십니까? "


근무시간 거의 마우스와 자판으로만 일을 해야 해서 손목이 아프다고 웃으며 엄살이다. 업무시간 끝나고 휴대폰도 받아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부대다. 그러니 갇혀있는 부대가 아니라 감사하고, 아이는 이런 곳에서 아이는 군대 간 21개월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 거라 더더욱 감사하다.




© howier, 출처 Unsplash


남편이 군대 갈 때 난 여자친구였기에 입대할 때부터 제대할 때까지 고무신녀였다. 바쁘기도 했고, 딱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기에 저절로 난 제대할 때까지 기다린 의리 있는 여자가 된 것이다. 남편은 군대 가더니 군대 체질이라고 했다. 아버님이 군인 장교 출신이라 보고 배운 게 군인의 절도 있고, 규칙적인 모습에 자기도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군인은 공무원이고, 나라에서 집주고, 밥 주고, 옷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잘하면 유학도 보내주고... 군인으로 말뚝을 박고 싶다고 했다. 난 군인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군대 말뚝 박을 거면 우리 헤어지자고 했다.


짝꿍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발령받은 곳에 따라 이사를 가야 했고, 초등학교를 4번이나 전학 다녀서 자기는 어린 시절 친구가 없다고 했었다. 강원도, 부산, 전라도... 여기저기 나라에서 가라고 하면 가야 했단다. 우리 어머니는 짐을 풀면 이사라고 할 정도였으니 6년간 4번 전학은 아이들에게 좋았을 리 없었을거다. 그 소리를 듣고 군인 되겠다는 남자친구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런 남자는 싫다고 한 것이다.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것도, 초등학교 3번 옮긴 나도 전학은 싫었었다. 하지만 난 잠실에서 20년 넘게 계속 살아서 아직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연락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학이 너무 싫었었다.




내 답이 옳다.


다른 답은 대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걸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여덟 단어 - 박웅현







© garri, 출처 Unsplash






어제 아들이랑 남편이랑 집 근처에서 한잔했다. 아들의 군대와 남편의 군대는 거의 30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다른 시스템이고 융슝한 대접이다. 아들이 부러운 남편은 라테 이야기로 대화의 처음과 끝을 맺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그때 내가 군대 말뚝을 박았으면 어땠을까?"

라면서 아들에게도 말뚝을 권하는 거다. 이건 무슨 소리냐!


" 그럼 그때 군인으로 남지 그랬어. 후회하지 말고."

" 후회라니요. 그때 선택으로 문주리를 잡았는데 무슨 소리십니까?"

" 엄마가 아빠를 잡은 거네?"

" 아냐! 아빠가 엄마를 잡은 거지."

" 엄마랑 결혼했으니 이렇게 너희들을 만났지. 안 그랬으면 아빠는 결혼도 못 했을 거다."

이 남자 참 달콤한 소리를 이렇게 술기운을 빌어서 하다니. 너란 남자 못 말린다. 아직까지 입만 살았네.



" 엄마! 내 친구들이 우리 집 부모님 좀 이상하대. "

" 왜? 우리가 왜?"

" 그 나이에 친한 부부가 있다는 게 내 친구들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 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둘만 여행 가는 집 없다는데?"

그런가? 우린 애들보다 부부 우선이라 그렇게 살았고, 애들도 그런 엄마 아빠를 조르지 않았고,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는 우리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기들도 이렇게 살 거라고. 짜식들 웃기네.


그렇게 날 잡아준 남편을 만나서 난 평생 열심히 일해야 했다. 사업한다고 이직한다고 할 때마다 내가 군인 되고자 한 사람 잡은 죄인이기에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사업한다고 몇 년간 돈을 못 벌어도 어쩌겠는가?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니 벌어야 했다. 힘들어도 내 선택이기에 난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가보지 못한 그곳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따위는 버렸다. 옳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에 내 선택이 옳아야 했다. 다 버리고 날 잡아준 남자가 부담스러웠지만 지금 버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랫기에 지금은 돈은 많지않아도 삶이 여유롭게 살고 있고, 고마운 내 마누라 소리도 듣고 산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어머니에게도 우리는 최고의 파트너였고, 앞으로도 같이 갈 영원한 동지라서 참 좋다.


늙어서 우리 동생들이랑 한동네 살고, 차 끌고 다니면서 유랑하자는 말에도 언제나 "그러자!" 해주는 고마운 내 짝꿍이다. 난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는 운전을 좋아하니 진짜로 최고의 파트너 맞다.


아이쿠야! 난 선택을 옳게 한 여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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