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좁은 건 우리 집. 그 곳은 바로 홋카이도.
거기 가 볼만 해요?
거기가 어디죠 손님?
그 홋카이도에 궁인가 성이 있다는데..
아, 홋카이도 신궁 말씀이시군요!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과 함께하는 스무고개 시간. 버스투어를 나가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라 어느덧 손님이 대강 말하면 알아듣는 눈치의 경지까지 왔다. 이번 손님은 삿포로 여행 중, 홋카이도 신궁을 갈지- 말지- 고민하는 손님이었고 나에게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셨는데.. 손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기에, 확실한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또 물어보는 손님이 있을 수 있기에 시간이 남는 휴일, 이참에 다녀와보기로 했다.
이번 홋카이도 신궁 방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이용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후쿠오카에서는 챠리챠리가 있지만 홋카이도는 시내 공유 자전거, 포로클이 있어서 이걸 타고 다녀왔다. 30분에 160엔으로 회원가입할 때 일본 번호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현지인 아니면 사용이 어렵다. 더군다나 결제하려면 신용카드가 필요해서.. 나는 신용카드가 없기에 여자친구 카드로 가입해서 잘 타고 다니고 있다. 나란 남자, 쓰레기.
삿포로역에서 홋카이도 신궁까지는 자전거 타고 대략 20분. 길도 그리 어렵지 않기에 열심히 타고 가 보자.
홋카이도 신궁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마루야마 코엔역이 도착했다. 이 역은 저번에 동물원을 가볼 때 와봐서 대충 길을 알고 있다. 적당히 번화한 역 주변과 예쁘면서도 큼지막한 건물이 인상 깊은 곳이다. 맘 같아선 자전거를 끝까지 끌고 가고 싶지만 포로클 정거장이 신궁 내에 없어서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근처 자판기에서 돌아다니면서 마실 음료를 하나 샀다. 자전거를 탄 나만 더운 걸까? 햇빛은 없어서 흐리지만 더운 날씨임에도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 나와서 본인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 아저씨.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커플.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나 같아도 자주 나오겠지만, 생각보다 날벌레가 많아서 재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홋카이도 신궁에 올라가는 길에 본 큰 토리이. 토리이는 보통 신사 입구에 세워지며 신과 일반인의 영역의 입구 혹은 통로 같은 역할로 세워졌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동물 중, 새를 뜻하는 토리鳥가 들어갔는지에 대해선 유명한 설이 있는데, 예로부터 신의 소식은 새가 전했다고 해서 그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홋카이도 신궁의 토리이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오, 크다.'다. 후쿠오카 다자이후의 토리이보다 더욱 큰 것 같은 홋카이도 신궁의 토리이는 주변의 무성한 수풀과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는데, 원래 토리이가 신성한 구역의 입구의 용도로 세워진 만큼 그 역할을 잘 하는 것 같았다. 높이가 애매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토리이를 지나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큰 토리이를 지나면 바로 홋카이도 신궁은 나오지 않고, 이름 모를 작은 신사들이 옆에 늘어서 있다. 여기도 뭐랄까. 우거진 숲속 사이에 있어서인지 묘하게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 신궁에 가는 내내 약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느낌을 줬었다. 이 숲을 벗어나면 뭔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 나올 것 같은 느낌? 사진을 찍고 보정을 하며 열심히 무언가 찍혔는지 찾아봤지만 딱히 이상한 건 찍히지 않았다. 내심 기대했는데. 유감.
작은 신사들을 지나 숲에서 벗어나니 카페가 하나 나왔다. 카페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느낌으로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게 나무로 지어진 깔끔한 카페였지만 방금까지 조용하고 고즈넉한 길과는 다르게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슨 카페인가 싶어서 알아보니 '진구차야'라는 카페로, 카페 앞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무더운 날, 아이스크림은 나를 유혹했지만 이제는 직장인의 지갑이 되어 돈 들어올 일이 적기에 욕망을 꾹 참고 카페를 지나쳐갔다.
드디어 도착한 홋카이도 신궁. 원래는 삿포로 신사라는 이름으로 1869년에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하면서 이주민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기 위해 지어진 신사다. 그 후, 메이지 천황을 모시게 되면서 신사에서 신궁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신사는 내가 지금까지 본 신사들 중 가장 큰 느낌이었고, 가장 새삥같은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게, 우선 홋카이도의 신사니 거대한 것이고(?), 지어진 게 1869년인데 내가 평소 보던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는 919년에 지어진 신사로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은 신사이니 당연한 감상이었다. 큰 지붕들은 아마 눈이 쌓이기 어렵게 하기 위해 경사를 놓게 지어 더욱 커 보인다. 입구에 있는 새끼줄, 시메나와도 지금까지 내가 본 신사 중 가장 큰 것 같은데.. 도쿄의 신사들도 이리 클까?
신사 내부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또 어글리 코리안이 되기 싫어 얌전히 구석에 서서 일본 감성의 스트릿 사진에 도전을 해봤다. 주변에 관광객도 많고, 해가 떴다가 졌다가 계속 바뀌면서 나도 설정을 바꾸느라 애먹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사진을 몇 장 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균형 잡힌 사진. 역시 신사나 유명한 관광 스팟 입구에 가면 이런 사진을 찍어야지! 더욱 멀리서 사진을 찍어, 숲길 끝의 홋카이도 신궁을 담고 싶었지만 역광이었던 탓 있고, 내가 가진 렌즈 거리로는 그런 느낌이 잘 안 들어 아쉬웠다.
신궁을 대충 둘러본 듯해서 조금 더 탐험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홋카이도 신궁에 온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어느 외국인 여행 유튜버의 영상으로, 그 유튜버의 영상에서는 홋카이도 신궁 인근에 되게 신비스러운 산책로가 있다는 듯이 나와 그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돼 짚어 그 길을 찾고 싶었지만.. 문제는 너무 예전에 본 영상이고 영어로 된 유튜브라 검색을 해도 잘 모르겠다는 것. 이럴 땐 발로 뛰어야지!
홋카이도 신궁 바로 옆에는 마루야마 공원과 메이지의 숲이라는 숲이 붙어 있어서 울창한 숲을 걸어볼 수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얼마 닿지 않은 이 숲은 바닥에도 덩굴이 무성해서 원시림과 같은 느낌을 볼 수 있었는데, 원하던 그 산책로는 아니었지만 나름 느낌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저 자리에서 몇십 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바닥을 뒤덮어버린 덩굴들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사 바깥세상의 건물들은 쌓이고 부서지고 있음에도 이 숲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매년 녹색을 만들고 있다니. 괜스레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큼지막한 산모기에 놀라 숲을 빠져나왔다. 이놈의 모기. 감성에 젖을 시간 좀 주라-!
메이지 숲에서 모기로부터 도망쳐 나오니 마루야마 공원이 나왔다. 마루야마 공원은 도심 속 공원으로 넓다면 넓은 연못이 있어서 사람들이 근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그 근처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 카메라를 든 두 아주머니와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가보니 오리 가족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모습을 담고 싶어 셔터를 열심히 눌러봤지만 85mm와 50mm.. 생각보다 담기 어렵네. 별로 건진 게 없어서 아쉬웠던 찰나, 한 할아버지 한 분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오리는 호기심 가득한 몸짓으로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았는데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한 컷 찍고 나는 자리를 벗어났다.
누군가 공원에 세워 둔 자전거. 사실 정말 특별한 것 없는 자전거지만 녹색 사이 주황색이 눈에 띄어서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보정하면서 요즘 정말 색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이게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취향이 너무 바뀐다. 어떤 땐 이 색과 감성이 좋다가, 어떤 때에는 다른 색과 감성이 좋아지고. 그래서 요 몇 달간 색감을 정말 많이 만져보고 작업해 보고 있다. 보정했던 사진들도 바로 저장하는 게 아니라, 일단 좀 묵혀 둔 다음 다시 까보고. 이번 여행 사진들도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들. 한여름스럽고 필름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막상 포스팅할 때는 만족했지만 지금 보니 애매한 기분. 사진, 너란 녀석 어렵고 어렵구나!
여름 하면 단골 오브제인 수국을 찍어봤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인물 스냅을 찍을 때에는 항상 꽃과 인연이 없었는데 그래도 올해는 벚꽃도 사람과 찍어보고 수국도 이렇게 따로 찍어보게 되었다. 조용하고 예쁜 수국 꽃밭이라 여기서 인물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게으른 나는 이렇게 또 꽃 사진만 찍는다.
점점 강해지는 햇빛에 못 이기고 입구에서 샀던 음료수도 다 떨어질 때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삿포로 시내로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홋카이도 신궁을 뒤로하고 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홋카이도 신궁만! 보러 오는 건 어지간한 관광객 입장으로는 심심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그 옆에 있는 마루야마 동물원도 같이 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은 생각. 그때 나에게 신궁을 물었던 손님은 다녀오고 어떠셨을까? 아무쪼록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요즘 다른 이의 여행기를 읽고 내가 그런 글을 써보려 하지만 정말이지 너무너무 어렵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감성적인 글을 적을 수 있을까? 내가 적으면 괜스레 간지러운 기분. 이 부끄러움을 이겨내야 하는 걸까? 아니 나는 내 스타일을 가야 하나? 어려운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