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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an 15. 2024

독일 콘스탄츠, 교환학생을 가다

스위스와 독일 국경에서, 타향 살이 시작.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교내 교환학생 지원 시험에서 1등을 했다. 독일의 베니스라 불리는 '밤베르크 대학'과 스위스 국경 지역에 있는 '콘스탄츠 대학' 중, 외국어를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조선배의 조언에 따라 나의 1지망은 콘스탄츠 대학으로 정했다. 


국내 대학에서 독어독문학 제 1전공으로 1학년 때는 기초 독일어 과목을 주로 공부했고, 2학년 땐 심화 독일어를 공부했다. 3학년 땐 꿈에 그리던 교환학생에 가서, 1-2학년 때 공부한 과정을 심화로 공부하고자 했다.


독일을 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보호자의 재직증명서와 통장잔고 사본을 들고 주한독일대사관에 방문했다. 당시, 독일 대사관이 서울역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사히 주한독일대사관에서 학생 비자를 받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콘스탄츠 시청 이민과에 들러 한국에서 받은 학생 비자를 독일 학생 비자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독일이지만, 위치상 콘스탄츠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더 가까운 독일의 남쪽 끝에 위치에 있기때문에, 인천에서 파리, 파리에서 취리히 구간 비행기를 이용했다.


외국에 처음 가보기 때문에 퐁퐁, 수세미, 가위, 모든 자잘한 짐들을 챙기고 가느라 공항에서 꽤나 애를 좀 먹었다.


내가 머물게 된 기숙사는 Sonnenbühlstraße (조넨뷸슈트라쎄)에 위치한 기숙사로 주로 아시아인, 동유럽 친구들이 방은 따로 쓰되, 화장실과 부엌은 공유하는 형태의 기숙사. 학교에선 걸어서 15분 거리에 놓여있다.


기숙사에서 시내 쪽으로 버스를 10분 정도 타고가면 콘스탄츠 기차 중앙역이 보이고, 유로 학생(유럽 학생)만 쓸 수 있는 학생 버스카드를 주고, 이는 6개월 간 무료로 무제한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유로 학생카드가 있으면, 유럽 전 지역에서 뮤지엄과 갤러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이는 향후에 그리스에서 무료로 뮤지엄에 들어간 개이득의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마트는 항상 버스를 이용해, 파스타, 감자 등을 사 먹곤 했다. 독일은 당연 물보다 맥주가 더 쌌기 때문에, 유명한 리즐링 와인이나 맥주 등은 항상 마트에서 구매하곤 했다.


수업은 독일어 수업, 영어 수업을 병행하여 들을 수 있었고 교환학생 온 친구들끼리 모아 내 생일 파티도 했다. 일단 우리 학교는 생일마다 친구들끼리 집에서 모여서 파티하는 문화가 있었다.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에 파티를 만들어, 친구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파티가 진행됐다.


두번째 사진에서 내 바로 왼쪽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쉐넨과 공동 생일 파티를 열었고, 나는 이 날 

한국에서 한 번도 요리 해보지 못한 잡채와 튀김꼬치 등을 요리했다. 각종 야채를 튀김으로 만드는 동안,

얼굴 전체에 기름이 다 튀었고, 다시는 튀김을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했고, 이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독일 콘스탄츠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을 잇는 보덴 제(Boden See)라는 호수가 있고, 이 호수는 콘스탄츠 사람들에게 삶에 큰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수영복을 안에 입고 겉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수업 듣고, 수업이 끝나자 마자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한다. 이런 생활이 서울에서 온 나에겐 정말 낯선 행동들이 였다.


수업은 스위스에서 온 프랑스 악센트가 강한 교수님 덕에,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독일어와 영어 등 외국어 능력을 키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던 교환학생 생활이였다.


물가는 당연 독일 보다 비싼 스위스 국경 지역이였지만, 학생 식당 Mensa(멘쟈)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등, 큰 돈은 쓰지 않았던 6개월이였다. 디지털 카메라가 있던 시절이였고, 페이스북 초대를 통해 파티에 가던 시절이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였고, 종이 지도로 유럽 전역을 여행했던 잊지 못할 시절이었다.


나중에 직장인이 되어 다시 독일(베를린)에 찾아가보니, 물가는 그때와 달리 그닥 비싸지 않았다.

콘스탄츠에서 Friedrichshafend(프리드리히샤펜)이라는 공항이 가장 가까웠는데(저가항공만 다니는 공항),

여기서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체코, 스위스도 여행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샴푸 큰 통을 들고 갔다가 페널티를 물게 됐다.

만약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20유로라면, 티켓 만큼에 해당하는 페널티를 물게 됐다. 그 후론

작은 통에 든 샴푸를 들고 다닌다.


지금도 독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 콘스탄츠에서 교환 공부를 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다들, 콘스탄츠가 작지만 예쁜도시라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봐주었다.


그땐 한국 식당이나 한국 마트는 없어서 (지금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떡볶이와 신라면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감자볶음과 양파가 가득 들어간 파스타를 하도 먹어서, 살이 너무나도 많이 쪄서 한국에 돌아왔다.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Kein Deutsch, Kein Englisch (독일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교환학생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내 나이 24살, 벌써 13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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