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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y 24. 2023

그녀가 교장실을 찾은 까닭은

초1 신입생, 교장실 접수 사건

하교 약속 시간이 지나도 몽실이가 학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돌봄 선생님께 연락해볼까 망설이는 순간,

"엄마!"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오늘따라 얼굴이 상기된 것이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오늘 좀 늦게 나오네?"

엄마의 물음에 의기양양한 얼굴 표정.

"친구 좀 도와주다가 늦었어요."

"친구?"

"엉, 00이요! 00이가 모자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래? 같이 찾아주느라 늦었나 보구나. 모자는 찾았니?"

몽실이 고개를 절래절래. 그런데 표정이 무척 밝은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못 찾고 왔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괜찮아? 내일 찾으려고?"

"아니요! 아직 못 찾았는데, 곧 찾을 거에요!"

아마 같이 찾다가 못 찾고, 엄마랑 만날 시간이 지나서 몽실이 먼저 나왔나 보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데?"

"00이가 잘 모르겠대요. 그래서 방과후 교실도 가보고, 교실도 가보고 했어요. 스포츠 활동한 5층도 가봤어요."

"고생했겠네. 그런데 그 모든 곳에 00이 모자가 없었어?"

몽실이 고개를 끄덕끄덕.

찾아볼 곳은 거의다 찾아본 거 같은데, 아무래도 쉽사리 친구 모자를 찾기는 어려울 거 같다. 1학년 꼬맹이들이 모자를 찾겠다고 온 학교를 뒤지고 다녔으니 땀 좀 났겠네.


"선생님께 부탁드려보지 그랬니?"


 엄마의 물음에 갑자기 초롱초롱해진 몽실이 눈!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 낸 듯 어깨도 으쓱 올라간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00이 모자 찾으러 교장실에 같이 들어갔어요!"


 엥? 모자를 찾으러 교장실? 쌩뚱 맞게 왠 교장실?


"교장실?"


당황한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다.


"엉, 엉! 교장실요! 교장실 가서 00이 모자 찾아주라구요!"


아이고!! 아이고!!

요 맹랑한 초1 신입생이 내 딸이라니!!

천진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너의 무대포 정신은 어느 나라에서 온 DNA니?

교장선생님은 네 친구 모자 찾아주라고 계신 분이 아닌데!

하필이면 왜 교장실이니?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어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에 계셨어?"

"네, 네!! 교장선생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하셔서 00이 모자 찾아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00이 손 잡고 여기 저기 모자 찾으러 돌아다녀 주셨어요! 나는 엄마 만날 시간 돼서 중간에 달려나왔어요"


 교장실 문 벌컥 열고 들어온 꼬맹이 신입생 두 명의 "맹랑한 요구 사항"을 들으시고, 교장선생님은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래도 꼬맹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주시며 꼬맹이들의 모자를 성실히 찾아주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웃음도 나온다. 한편으론 송구하고 염치도 없다.  


"몽실이가 친구를 도와주려고 애썼구나."

엄마의 말에 몽실이 다시 어깨뽕이 올라간다.

"그런데, 학교에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는 교장실이 아니라, 교무실 옆에 있는 분실물 보관소에 가면 된단다."

"분실물 보관소요?"

"응,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을 모아 두는 곳이야. 아마 00이 모자도 내일 쯤 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아~ 몰랐어요!"

당연하지. 초1 신입생이 알기에는 너무 고급 정보지. 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도 없으면,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드리는 것이 맞을 거 같아. 교장선생님은 학교 전체를 책임지시고 하실 일이 많아서 너희들 잃어버린 물건까지 찾아주시기엔 너무 바쁘시단다."

내 말에 몽실이는 고개를 갸웃 한다.

"아닌데!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보고 웃으시며 모자 찾아주신다고 하셨는대요!!"

"그건 너희들이 너무 귀여우니까 한 번만 허락해주신 걸 거야. 다음엔 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리거나 분실물 보관소에 가서 찾아보도록 하자."


 교장선생님의 위엄이 예전 같지는 않나보다. 초1 신입생이 감히 겁도 없이 교장실의 문을 벌컥 열 정도이니. 우리 몽실이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분, 머리를 쓰담듬어 주시는 분, 달려가도 반겨주실 것 같은 분,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주실 것 같은 분"인가 보다.


 학교에서 가장 높으신 분, 무서운 분, 매일 양복 차림에, 뒷짐지고 학교를 거니시던 분. 선생님들이 쩔쩔매며 어려워하시는 분. 천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아~ 아~"하며 마이크에 대고 훈화 말씀을 한 없이 하시는 분. 함부로 말을 걸면 안될 거 같이 멀리, 높은 곳에 계신 그런 분이 우리 때의 교장 선생님이었었는데.


 권위와 위엄을 내려놓은 요즘 교장선생님들.

 매일 등교시간에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맞이하시는 교장선생님도 계시고, 교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언제든지 꾸러기들 상담을 도맡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점점 심해지는 학부모 민원에 힘들어하는 담임교사들을 다독여주시기도 하고, 악성 민원을 앞서서 아주시기도 한다.

 몽실이 학교에서는 어린이 날을 앞 둔 5월 3일 등굣길에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어린이날을 축하해주시기도 하셨다. 지난 날 우리네의 권위적인 교장선생님들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이 아닐까.


제일 어른이신 그 분들의 용기있는 변화의 발걸음이 감사하다. 응원해 드리고 싶다.


"엄마, 우리 교장선생님은요~~!"

몽실이의 교장선생님 찬양 2탄이 하굣길 내내 이어졌다.

나는 그런 몽실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담쓰담.


한 아이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계신지, 몽실아, 너는 아니?

네가 얼마나 축복 받은 아이인지.

복 받은 시대에 태어나,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학교 생활하는

너의 초1 신입생 생활을

엄마는 한없이 부러워하며

응원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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