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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y 16. 2023

색연필 권력을 아시나요?

12 vs 48

"이 거 학교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림을 그리며 놀던 몽실이가 귀여운 강아지 눈을 하며 애교를 부린다. "안 된다"는 엄마의 대답을 이미 예상한 듯 눈꺼풀을 깜박이며 온갖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 우습다.


"친구들도 그런 거 학교에 가져오니?"


시무룩해진 몽실이, 고개를 절래절래.


그러다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번쩍 들며 눈을 반짝인다.


"00이요! 00이! 00이는 엄청 큰 거 가져왔어요!"


"엄청 큰 거?"


몽실이는 양팔을 옆으로 벌리며 대략의 크기를 알려준다.


"요~~~만한 거요! 엄청 커요!"


"그렇게 큰 것이 책상 위에 올라가기는 하니?"


고개를 열심히 끄덕끄덕.


"나한테 없는 색도 정말 많은데! 내가 연핑크 빌려달라고 졸랐는데도 안 빌려줬어요. 엄마, 나도! 나도! 나도 48색 학교에 가져갈래요. 엉? 엉? 그래도 돼요?"



색연필 이야기다.

학교에 보낸 색연필과 사인펜은 12색. 제 딴에는 표현해 보고 싶은 색이 많은데 12색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불평.



"선생님께서는 엄~~~청 큰 색연필 가져온 00이에게 무슨 말씀 하셨어?"


몽실이는 고개를 다시 푸욱 숙인다.


"너무 크다고, 작은 것으로 바꿔오라고요."


목소리도 작아진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색이 많으면 그림 그릴 때 더 잘 그려질 거 같은데?"


엄마의 질문에 몽실이 고개를 갸웃. 그 이유까지 추측하긴 어려운 가 보다. 그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친구들이 샘낼까봐요?"


아이다운 대답이다. 00이의 색연필이 많이 부러웠나 보다. 몽실이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며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저학년 교실에서는 그들만의 "권력"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때론, 그 권력이 물리적인 "힘"일 때도 있고, 몰래 가져온 "장난감"일 때도 있고, 포켓몬 빵 속에서 나오는 작은 "스티커"일 때도 있다. 신기해보이는 학용품일 때도 있고, 새 핸드폰일 때도 있다.



 

   전에 지도했던,

소심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에 잘 집중하지 못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할 때면, '떠억~' 하니 그 아이 책상에 올려졌던 48색 색연필. 저학년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필처럼 깎아쓰는 얇은 색연필.


 학교 책상이 그리 넓지 않으니, 그 색연필통은 항상 짝궁 자리까지 차지하거나 옆 통로까지 삐죽 나와있을 때가 많았고.  지나가던 친구들이 "툭"치고 가면 "우르르~" 요란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곤 했었다. 철제로 만들어진 색연필 통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질 때도 많았다.


 색연필이 온통 책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도화지는 놓을 데가 없어서 색연필 케이스 위에 구겨진 채로 너덜너덜. 그 옆으로 꺼내어진 10여 개의 색연필이 굴러다니고 있으니,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색연필로 행위 예술을 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00아, 오늘 주인공은 네 '그림'인데, '색연필'이 주인공이 된 거 같구나?"


  그 옆을 지나가던 내가 한마디 던지자, 00이는 도대체 선생님이 뭔 소리를 하시는지 어리둥절한 표정.


 "색연필 통이 너무 커서 불편하지 않니? 친구들처럼 12색 가져오고, 이것은 집에서 사용하면 어떨까?"


 아이는 고개를 절래 절래.

 얼굴색도 금방 어두어진다.



 아이의 속마음이 짐작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색연필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 필요한 도구라기보다,

소심한 그 아이가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권력"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


 평소엔 친구들의 뒷편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아이가 유일하게 돋보이는 시간이

그 색연필을 사용하는 이 순간이니까.


 여기 저기서 "이 색 좀 빌려줘.", "나 이 것 좀 써도 돼?", "이 색 진짜 이쁘다", "와~ 금색도 있어."라며 그림 그리기 시간만 되면, 그 아이 주변으로 몰려들던 아이들.


 그러면 그 아인,

평소와는 사뭇 다른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빌려주기도 하고,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론, 그 문제의 48색 색연필로 인해 소소한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선생님, 00이가 저에게 색연필 안 빌려줘요. 다른 애들에겐 다 빌려주면서!"

 "선생님, 00이 색연필이 자꾸 제 책상으로 넘어와서 불편해요!"

 "선생님, 00이는 왜 12색 색연필 안 가져와요? 저도 저렇게 큰 거 가져와도 돼요? 우리 집엔 더 큰 거 있어요."


 비록 작고 미미하지만, 

색연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며,

친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참 짠했던 그 녀석.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통해 돋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어른들이 가르쳐준 행동이 아닐까.


  더 큰자동차, 더 넓은 집, 더 비싼 명품 등으로 존재감을 뽐내고자 하는 어른들이 많으니.


 그런 어른 중에 한 사람인 나도 떳떳하지는 못한 처지.






 

 

 학기초에 담임 선생님들이 학생 개인 준비물을 안내하실 때,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는 "12색 색연필", "12색 사인펜"이라고 색칠 도구의 사이즈를 지정해주시곤 한다. 물론 다양한 색깔의 좀더 큰 색칠도구를 사용하면 훨씬 풍성한 표현력을 기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학년 수준에서는 12색으로도 충분하며, 서로 색을 섞어 또다른 색을 만들어 내며 색칠할 수도 있으니 굳이 큰 것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너무 사이즈가 크면, 저학년 학생 스스로 준비하고 정리하기 버겨우며, 좁은 책상으로 인해 오히려 활동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색연필 뿐만 아니다.

 너무 큰 필통, 장난감 장치가 달린 학용품, 덜그럭 소리가 나는 학용품 등도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수업 집중에 도움이 된다. 교실 책상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교과서와 필통을 올려놓으면 꽉 찰 정도. 그러니 소리 나지 않는 평범한 필통, 단순한 모양의 연필, 지우개 등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 우리 아이가 학습의 주인공의 되는 비결이리라.




  

 

"몽실이 선생님께서는 왜 12색 색연필을 가져오라 하셨을까?"


엄마의 물음에, 이것 저것 더 대답을 찾아보는 몽실이.


"책상에 올려놓기 힘들 거 같아요."

"정리하기 불편할 거 같아요."

열심히 답을 찾는 거 보니, 이미 이 녀석 머릿속에는 48색 색연필을 학교에 가져가면 안되는 까닭이 들어 있었나 보다.


"우리 몽실이 생각이 다 맞는 거 같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큰 거 말고, 12색 가져오라 하신 거 같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듯.

이 걸 가져가면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까, 얼마나 인기를 끌며 주목 받을까' 하는 욕심을 내려놓기 어려운 듯, 자꾸만 그래도 48색 색연필을 가져가도 되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학교 책상을 큰 것으로 바꾸면 되잖아요?"

"사물함도 지금보다 더 커지면 되잖아요?"


하하하.

그렇구나. 몽실아.

너의 꿈대로 우리 교실이 좀 더 넓어지고,

아이들의 활동에 제약이 없는 곳이 되면 좋겠구나.

그것도 옳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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